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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

『위대한 질문』 레셰크 코와코프스키 (열린책들, 2010) 『위대한 질문』을 펴낸 열린책들의 편집자 노트(웹 카페를 통해 확인)를 보면 이 책 자체를 놓고 '위대한 질문'을 던진다. 나는 왜 이 책에 악행을 저지르는가? 이 책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가? 어째서 아무것도 없는데 무언가를 만들려 하는가? 최선의 편집 형태는 무엇인가? ……그럼 나도 질문을 던진다. 이 책을 읽는 나는 지금 여기에 실재하는가? 나는 이 책을 읽는 행위로써 행복한 것인가? 나는 이 책의 텍스트를 믿어야만 하는가? ……에픽테토스의 철학은 불교의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와 닮아있다. '하늘을 긍정하고 운명을 사랑하라', 또는 '운명의 긍정'이란 하나의 구절로서 표현되는 그것이다. 그래, 이건 쉬이 생각할 수 있는 명제다. 그럼 고르기아스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고 헤라클레이토스 ㅡ.. 더보기
『흑백』 미야베 미유키 (북스피어, 2012) 이를테면 텍스트와 서브텍스트의 맞물림. 그거다. 미스터리나 이런 괴담이 갖는 강력한 헤게모니는 현실에서 느끼는 두려운 마음을 일종의 (설명하기 힘든) 형태로 만들어준다는 것에 있다고 여기고 싶다. 뭔가를 맞닥뜨리고 인식하고 재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단숨에 퓽, 하고 쏟아내는 거다. 어떤 생각들을 전부 마음에 넣어 뚜껑을 닫아버리면 그만이지, 하고 쉬이 치부할 수 없다. 뭔가를 말한다는 것은 짐을 내려놓는다는 뜻도 될 수 있으며, 타자에게 마음을 내비침으로써 그 두려움이 내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재확인할 수도 있는 까닭이다. 마지막 이야기 「이에나리(家鳴り)」에서 저택을 지키는 관리인 ㅡ 왠지 웃을 수만은 없는 ‘끝판 왕’ 같은 느낌인 걸 ㅡ 이 저세상과 이 세상을 잇는 길목에서 손님을 맞이한다는 것을 이 .. 더보기
『망량의 상자(전2권)』 교고쿠 나쓰히코 (손안의책, 2005) 스피노자(Baruch de Spinoza)는 코나투스(conatus)의 개념을 ‘자신의 존재 안에서 지속하고자 하는 노력’이라고 정의했다. 반면 니체(Friedrich Nietzsche)는 어땠나. 그는 스피노자의 코나투스를 이렇게 비판했다. 「자기 보존 명제는 틀렸다. 그 반대가 참이다. 바로 살아 있는 것들 전부가 가장 명료하게 보여 주고 있다. 이것들은 자신을 보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이상이 되기 위해서 행위한다.」 이것은 물론 니체의 ‘힘에의 의지’라는 명제로 뻗어나가는 개념이 되겠지만, 잠시 『망량의 상자』에서의 가나코와 요리코의 경우에 빗대어 볼까. 철로에 떨어진(혹은 떨어뜨린) 행위는 가나코와 요리코를 이어주는 끈이다. 하나가 다른 하나로 환생한다는 소녀들의 생각에서 말이다. ‘그 이상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