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거의 모든 죽음의 역사』 멜라니 킹 (사람의무늬, 2011) 거의 모든 죽음의 역사 - 멜라니 킹 지음, 이민정 옮김/사람의무늬 죽음은 확실하고 삶은 불확실하다. 이 말을 뒤집어보면, 「삶은 불완전하지만 죽음은 완전함 그 자체」이다. 그런데 조기 매장 ㅡ 사후 섣불리 입관 및 매장이 진행되어 ㅡ 으로 인해 관 속의 망자라고 생각했던 사람에게 아직 숨이 붙어 있을 가능성을 생각해 본다면 오히려 삶보다 죽음 쪽이 불확실하다고 해야 할지도. 나는 실제로, 무척 진지하게, 이런 일을 생각해본 적이 있다. 내가 죽은 뒤 매장이 되었는데 한참 후 내 눈이 번쩍 뜨인다면! 깔끔하게(!) 죽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울지도 모른다. 그래서 결심했다. 내 죽음 이후의 처리는 화장(火葬)으로 하기로. 이것이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하게 죽는 방법'이다. 어쨌거나 '불확실한 죽음.. 더보기
『애도하는 사람』 덴도 아라타 (문학동네, 2010) 애도하는 사람 - 텐도 아라타 지음, 권남희 옮김/문학동네 소화불량에라도 걸린 것처럼 무엇인가에, 어딘가에 이르려 하는 사람. 덴도 아라타는 어느 인터뷰에서 말했다. 「실제로 '애도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와의 만남으로 우리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가, 하는 쪽이 중요한 게 아닐까.」 이건 죽음이라는 변수에 대한 솔루션도 아니고 사자(死者)에게 명복을 빌어줌으로써 스스로가 위안받으려 하는 것도 아니다. '애도하는 사람'인 시즈토에게서 자기위안적 의미부여에 대한 측면이 언뜻 비치기는 하지만 그게 궁극적으로 『애도하는 사람』이 시사하는 바는 아니라고 본다. 나는 오히려 일상(삶)의 패러디가 아닐는지, 하는 생각을 조심스레 해본다. 왜냐하면 시즈토의 애도하는 행위 자체를 한마디로 딱 잘라 설명할 수 없거니와 특.. 더보기
『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열린책들, 2008, 신판) 언어의 감금, 메타포의 광란, 잠언의 집약, 철학의 실체? 아니면 이 모든 것들을 거부하는 하나의 시(詩)일지도. 읽긴 했지만 어떻게 읽을 수 있었는지조차 모르게 만든다. 『그리스인 조르바』가 그렇다. 이것이 카잔차키스가 본문에서 말한 인도에서, 밤이 깔리고 나서 들리는 나지막한 소리, 먼 곳에서 육식 동물이 하품하는 듯한 느리고 야성적인 노래, 즉 '호랑이의 노래'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결국 '나'와 '조르바'는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에서의 제제와 뽀르뚜가, 삶에서의 아버지와 아들로 대체될 수 있으며, 나와 조르바는 문답으로써 서로를 갈구한다. 나에게 조르바는 네살바기 알카에게서 본 붓다의 모습인가 ㅡ 어차피 카잔차키스의 의도에 따르면 신(神)은 인간이 창조한 삶의 도약에 필요한 필요충분조건에 불과.. 더보기
『그리고 죽음』 짐 크레이스 (열린책들, 2009) 제목을 보자. 니콜라스 네그로폰테의 『디지털이다(Being Digital)』, 영화 《존 말코비치 되기(Being John Malkovich)》 그리고 짐 크레이스의 『그리고 죽음(Being Dead)』. 모두 ‘being’이 들어있으니 이것은 네그로폰테의 저서처럼 ‘죽음이다’라고 옮길(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럼 ‘그리고’ 앞에는 뭐가 있을까. (아마도)삶이겠지. 그럼 ‘그리고 죽음’이 아니라 ‘죽음 그리고’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어차피 죽음 뒤엔 삶이고, 삶 뒤엔 죽음이니까 ㅡ 이런 식으로 하다 보면 ‘그리고 죽음’은 ‘죽음이다’, ‘삶이다’, ‘그리고 삶’ 또는 ‘그러나 삶’으로 바꿀 수 있다(말장난이 아니다). 드넓은 바다 전체를 소리로 바꾸어 버리는 해저 동굴처럼 노래할 수 있는 남자와,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