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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

『20세기 사상 지도』 대안연구공동체 (부키, 2012) 20세기 사상 지도 - 대안연구공동체 기획/부키 생산의 힘이 역사를 만든다며 계급투쟁을 부르짖었던 맑스는 그것 때문에 보드리야르로부터 비판당했다. 그러나 나는 그가 말년에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다. 「나는 맑스주의자가 아니다.」 ……철학책을 (두서없이) 읽다보면 '지금의 나는 이 책을 읽기 전의 내가 아닌'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물론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나도 모르게 어깨에 힘이 들어갈 때가 분명히 있다. 불한당들을 모조리 때려눕히고 유유히 사라지는 히어로를 만끽한 다음 영화관에서 나올 때처럼. 하지만 그럼에도, 철학은 수많은 은유로 점철된 소설이나 시에 비해 더 어렵게 느껴질 때도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철학을 접하려면 끈기가 필요하다. 아주 약간의 끈기가. 『20세기 사상 지도』는 연대.. 더보기
『탱고 인 부에노스 아이레스』 박종호 (시공사, 2012) 탱고 인 부에노스 아이레스 - 박종호 지음/시공사 카를로스 가르델의 「포르 우나 카베사(Por una cabeza)」를 오랜만에 들었다. 자그마한 미니 CD가 초판 한정으로 책 뒤에 함께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저 자글자글한 소음마저 달큼하달까. 영화 《여인의 향기》에 나오는 음악은 너무나 세련되고 매끈해서 날카롭기까지 한데 비해 카를로스 가르델의 음성으로 듣는 건 아련할 정도다. 섹스가 육체의 위로라면 탱고는 영혼의 위로다, 라는 카피가 헛되지 않게 『탱고 인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유려한 묘사와 함께 곁들여진 사진으로 아르헨티나의 무더운 밤을 맛있게 담아냈다. 그날, 탱고 공연을 보고 나온 날.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 아이레스 밤하늘에 초승달이 위태롭게 떠 있던 날 (...) 알 파치노가 주연한 영화 《여.. 더보기
『장미의 이름(전2권)』 움베르토 에코 (열린책들, 2000, 신판) 알다시피 세상 모든 건 점, 선, 면, 체를 이루며 움직인다. 그러나 누군가의 말대로 기억이란 콩나물 비빔밥 같아서 나는 무엇이 어떤 점이었는지 뭐였는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비록 스트레스 해소와 데시벨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는 모르지만, 장서관 미로의 비밀을 알아냈을 때 윌리엄의 외침은 점, 선, 면, 체 모두를 꿰뚫는 환희의 데시벨, 그것이었으리라 ㅡ 화국和局으로 끝나버리고 말았던 애매모호한 장서관의 여행, 그리고 쾅, 머리를 뒤흔듦, 이것들을 생각해보라 ㅡ 마치 여유로움의 벼락부자가 된 듯이. 에코의 다른 저작에서도 '집단에서 함께 오줌을 누지 않는 사람은 도둑이거나 간첩'이라 하지 않았나. 이것으로 보건대 당시 윌리엄은 이루 말 할 수 없는 환희에 찬 지식의 도둑이었음에 틀림없다. 단순한 추리 소설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