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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채

『미즈치처럼 가라앉는 것』 미쓰다 신조 (비채, 2013) 미즈치처럼 가라앉는 것 - 미쓰다 신조 지음, 권영주 옮김/비채 워낙에 '고립', '민속 신앙'과 같은 이야기에 관심이 많은지라 도조 겐야 시리즈는 꼭꼭 찾아 읽고 있다. 번역된 시리즈 중 『잘린 머리처럼 불길한 것』 다음으로 흥미롭다고는 생각하나, 끝까지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풀리지 않는 것들이 꽤 많다. 끝에서 사라졌다가 나타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사람의 행방, 표지를 남성과 여성으로 나누어 놓은 것(첫 번째 의문과 이어져 있기라도 한 것일까), 소후에 시노가 느낀 '무엇'의 정체…… 만약 이것들이 단지 독자된 입장에서만 느낀 다소 비약된 것이 아니라 작가에 의해 부러 의도된 것이라면, ㅡ 전작에 이어 재등장한 소재 또한 있으니 ㅡ 그렇다면 『미즈치처럼 가라앉는 것』의 속편은 반드시 나오고.. 더보기
『GO』 닉 페어웰 (비채, 2013) GO - 닉 페어웰 지음, 김용재 옮김/비채 빌어먹을. 나와 내 책. 엿이나 먹어라. 그는 자신의 말에 반응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에 대해 짜증이 나고, 많은 책을 읽을 수 없다면 성경과 셰익스피어를 보라는 교수의 말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그는 인생에 있어 모든 것을 반복이라 여기며 스스로가 재수라곤 찾아볼 수 없는 포레스트 검프라고 단정 짓는가 하면, 도저히 진척되지 못하는 원고뭉치와 씨름하면서 머릿속에서만 존재하는 포르셰를 잡고 매달린다. 또 언제나 예술의 이름으로 삶을 양보해야 하는지를 궁금해 한다. 「그런 예술은 개나 줘버리라고 해라.」 물론이다. 그러나 '그런 예술' 또한 예술이며 그 예술을 받아먹는 자 또한 예술가이다. 그자가 평범한 예술가이냐 개 같은 예술가이냐 하는 것만이 문제로 남을 것.. 더보기
『붉은 망아지 · 불만의 겨울』 존 스타인벡 (비채, 2013) 붉은 망아지.불만의 겨울 - 존 스타인벡 지음, 이진.이성은 옮김, 김욱동 해설/비채 스타인벡의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은 노동자와 대공황 그리고 그에 끌어오는 신화나 성서의 주제라고 할 수 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을 『분노의 포도』의 오키(okie)라고 볼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비참한 사유로 보자면 그와 비스름한 양상을 띠고 있기는 하다. 물론 우리의 진저맨 시배스천 데인저필드에 비하면 여기 등장하는 이선은 조금 더 우울한 낡은 세계에 살고 있으며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을 알아채지 못하는 반거충이일지도 모른다 ㅡ 「싸워야만 합니까?」 「물론이다. 그리고 속삭이지 마라.」 그러니 더더욱 이선 앨런 홀리(Ethan Allen Hawley)로서는 다른 홀리(Holly) 가문이 아니었던 것이 다행이라면.. 더보기
『비행공포』 에리카 종 (비채, 2013) 비행공포 - 에리카 종 지음, 이진 옮김/비채 여자가 말한다. 그렇게 나한테 적대적인 개자식은 처음 봤어. 혹은, 여보, 미안하지만 이 잘생긴 남자하고 나가서 섹스 좀 하게 자리 좀 피해줄래? 남자가 말한다. 이런 엉덩이는 처음이야. 혹은, 당신의 집게손가락이 필요해요, 집게손가락하고 마주 붙일 수 있는 엄지손가락도. 이사도라의 패턴은 부코스키의 『Women』도 아니고 알 켈리식 「Sex Me」도 아니다. 그렇다고 눈이 왕방울만 한 밀라 쿠니스가 옷을 벗는 《프렌즈 위드 베네핏》은 더더욱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예술가가 되려는 남자와는 절대 얽히지 말라는 주드의 말은 틀렸다. 물론 예술가가 되려고 애쓰는 자들은 미친놈일 게 빤하지만 정신분석의보다는 낫다는 것 또한 익히 알려진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 더보기
『안녕, 긴 잠이여』 하라 료 (비채, 2013) 안녕, 긴 잠이여 - 하라 료 지음, 권일영 옮김/비채 나는 하세 세이슈의 『불야성』을 읽던 때를 기억하고 있다. 신주쿠는 등장인물들을 지켜주는 가이아처럼 여겨진다고 내뱉었던 말이 떠오른다. 실제로 그곳에서 일 년간 살아 보니 처음 발을 들이밀 때와는 달리 점점 집 밖의 아스팔트가 내 발을 끌어당기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북한산에 오르면 모텔 불빛과 교회 십자가밖에는 보이지 않는다던 어느 철학자의 말과 일맥상통하는 곳이 있다. 우리가 발붙이고 있는 땅은 아감벤이 언급했던 도시(city)가 아닌 수용소(camp)라는, 시쳇말로 개 같은 기분이 그때는 절실히 통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하라 료의 경우는 어떨까. 나는 그에게 원한 감정 비슷한 무언가가 있다. 억하심정이라 하는 편이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