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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집

『맨해튼의 열한 가지 고독』 리처드 예이츠 (오퍼스프레스, 2014) 맨해튼의 열한 가지 고독 - 리처드 예이츠 지음, 윤미성 옮김/오퍼스프레스 죄다 고독하거나 공허하거나 아니면 후유증 내지는 소외감을 느끼는 이들이 나와 춤을 추고, 예이츠의 미니멀한 묘사는 굳이 시대상을 들먹이지 않아도 온몸으로 고독의 피해를 입은 자들을 고스란히 현대로 데려와 이질감을 느낄 수 없게 한다. 그것이 너무나도 신중한 탓에 외려 인물들은 필요 이상으로 쓸쓸하고 고달프게 그려진다. 여자는 오래도록 입원 생활을 하고 있는 남편에게 무신경하고 남편 또한 그녀에게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아프지 않아」). 그들은 서로에게 고독을 심어준 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데, 그녀가 남편을 뒤로하고 병원을 나설 때는 어딘지 모르게 김승옥이 그린 몰래 여관을 빠져나오는 두 젊은이를 연상케 한다. 예이츠.. 더보기
『더블린 사람들』 제임스 조이스 (열린책들, 2013) 더블린 사람들 - 제임스 조이스 지음, 이강훈 옮김/열린책들 실은 조이스 자신이 도피자이고, 더블린과 떨어져 있으면서도 더블린 사람들이여야만 했다. 그 스스로가 '더블린이라는 도시가 마비의 중심이라고 느껴졌기 때문에 더블린을 배경으로 선택했다'고 밝힌 것은 다른 의미 없이 문자 그대로이다. 『더블린 사람들』을 관통하는 것은 종교적이며 비종교적이고, 허무적이되 허무만을 좇지 않았으며, 도시를 보여주고 있지만 도시의 세련됨은 찾아볼 수 없는 마비라는 안개에 둘러싸인 은밀한 상징이다. 그러므로 어떤 의미에서 『더블린 사람들』의 주인공은 사람들이 아니라 더블린 그 자체일 것이다 ㅡ 더군다나 이는 「위원회 사무실의 담쟁이 날」에서 하인스가 암송하는 만 보더라도 쉽게 알아챌 수가 있다. 조이스가 고독과 허무에 익숙.. 더보기
『참을 수 없는 가우초』 로베르토 볼라뇨 (열린책들, 2013) 참을 수 없는 가우초 - 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이경민 옮김/열린책들 혼돈에는 일정한 규칙이 없다. 혼돈 그 자체가 하나의 질서인 탓이다. 볼라뇨와 매한가지로 지금은 죽고 없는 일본의 어느 작가에 의하면 그는 예술을 공공의 미로 보았다. 문학이 우리 머리끄덩이를 잡고 선배연하는 걸 고깝게 볼 필요가 없다는 것은, 어찌 보면 요란뻑적지근한 그 문학의 혼돈에 체계적인 혼돈스러움, 즉 일종의 그것만의 질서를 부여하는 일일는지도 모르겠다. 그 앞에는 리트머스 시험지처럼 다종다기하면서도 '참을 수 없는' 문학을 향한 용기가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강렬하게 읽히는 단편 「짐」에는 문학을 하려는 짐과 길가에서 불쇼를 하는 남자 그리고 횃불에 빠진 짐을 뜯어말리는 '나'가 등장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짐이 아.. 더보기
『인체 모형의 밤』 나카지마 라모 (북스피어, 2009) 인체 모형의 밤 - 나카지마 라모 지음, 한희선 옮김/북스피어 나카지마 라모식 진수성찬. 세이초나 하루키처럼 라모의 글을 마주하면_오호, 역시 라모인가_하고 어렵지 않게 눈치 챌 수 있다. 책은 호러를 얘기한다기보다 인간을 얘기하기 위해 그저 호러라는 형식을 빌려왔다고나 할까. 각 작품의 끝에 가서_뭐야 이건, 대체 왜 결말이 이렇게 돼버린 거지_하고 애면글면 머리를 긁어봐야 답은 나오지 않는다. '재미있으니 됐잖아' 식으로 후루룩 읽어버리면 된다. 더보기
『잠복』 마쓰모토 세이초 (모비딕, 2012) 잠복 -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경남 옮김/모비딕 문학의 본질은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지만 누락되는 삶 역시 거짓말처럼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수녀의 일기처럼 순수했던 사람 하나가 웬일인지 범죄자가 된다. 가업을 이으려 착실히 반죽을 개던 선량하기만 한 메밀국수집 아들이 어느 날 갑자기 누군가를 해한다는 식의(이유야 어쨌든 그런 상황에 몰릴 수밖에 없는) 범죄. 동기는 너무나도 분명하지만 거기서부터 범죄에 이르기까지의 경위가 애달프다. 고도의 경제 성장, 샐러리맨의 급증, 그에 따라 반듯하게 재단된 사회로부터의 사회적 배경과 인간의 정념이, 얼굴 뒤쪽 보이지 않는 손짓의 '거절하지 못할 제안'과 반응해 몰락의 길을 걷고 만다. '증명 시리즈'로 악명 높은(!) 모리무라 세이치(森村誠一)는 이런 말을 했..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