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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붉은 망아지 · 불만의 겨울』 존 스타인벡 (비채, 2013) 붉은 망아지.불만의 겨울 - 존 스타인벡 지음, 이진.이성은 옮김, 김욱동 해설/비채 스타인벡의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은 노동자와 대공황 그리고 그에 끌어오는 신화나 성서의 주제라고 할 수 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을 『분노의 포도』의 오키(okie)라고 볼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비참한 사유로 보자면 그와 비스름한 양상을 띠고 있기는 하다. 물론 우리의 진저맨 시배스천 데인저필드에 비하면 여기 등장하는 이선은 조금 더 우울한 낡은 세계에 살고 있으며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을 알아채지 못하는 반거충이일지도 모른다 ㅡ 「싸워야만 합니까?」 「물론이다. 그리고 속삭이지 마라.」 그러니 더더욱 이선 앨런 홀리(Ethan Allen Hawley)로서는 다른 홀리(Holly) 가문이 아니었던 것이 다행이라면.. 더보기
『제3제국』 로베르토 볼라뇨 (열린책들, 2013) 제3제국 - 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이경민 옮김/열린책들 나치와 전쟁이란 명제라면 우리는 이미 소설 『나치와 이발사』나 영화 《버디》와 같은 매개체를 통해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것들로 인해 충분히 악마 같은 소설과 영화들을 접했으면서도 늘 (어떤 의미에서건) 전쟁과 상흔에 대해 이야기하고 해석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ㅡ 인간이 꿈의 실현을 욕망한다지만 실은 그 욕망 자체를 욕망하고 있는 거라면 어떨는지. 그런 측면에서라면 소설 속 찰리의 대사가 의미심장해질 수밖에 없는 것은 빤한 일일 것이다. 그는 친구의 집을 찾다가 작고 까만 개를 치어 죽인다. 우도는 전에 봤던 개인지 유기견인지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느냐고 묻지만 찰리의 대답은 실로 무시무시하다. 「차에서 내려서 자세히 살펴봤거든. 같은 놈.. 더보기
『비행공포』 에리카 종 (비채, 2013) 비행공포 - 에리카 종 지음, 이진 옮김/비채 여자가 말한다. 그렇게 나한테 적대적인 개자식은 처음 봤어. 혹은, 여보, 미안하지만 이 잘생긴 남자하고 나가서 섹스 좀 하게 자리 좀 피해줄래? 남자가 말한다. 이런 엉덩이는 처음이야. 혹은, 당신의 집게손가락이 필요해요, 집게손가락하고 마주 붙일 수 있는 엄지손가락도. 이사도라의 패턴은 부코스키의 『Women』도 아니고 알 켈리식 「Sex Me」도 아니다. 그렇다고 눈이 왕방울만 한 밀라 쿠니스가 옷을 벗는 《프렌즈 위드 베네핏》은 더더욱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예술가가 되려는 남자와는 절대 얽히지 말라는 주드의 말은 틀렸다. 물론 예술가가 되려고 애쓰는 자들은 미친놈일 게 빤하지만 정신분석의보다는 낫다는 것 또한 익히 알려진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 더보기
『안녕, 긴 잠이여』 하라 료 (비채, 2013) 안녕, 긴 잠이여 - 하라 료 지음, 권일영 옮김/비채 나는 하세 세이슈의 『불야성』을 읽던 때를 기억하고 있다. 신주쿠는 등장인물들을 지켜주는 가이아처럼 여겨진다고 내뱉었던 말이 떠오른다. 실제로 그곳에서 일 년간 살아 보니 처음 발을 들이밀 때와는 달리 점점 집 밖의 아스팔트가 내 발을 끌어당기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북한산에 오르면 모텔 불빛과 교회 십자가밖에는 보이지 않는다던 어느 철학자의 말과 일맥상통하는 곳이 있다. 우리가 발붙이고 있는 땅은 아감벤이 언급했던 도시(city)가 아닌 수용소(camp)라는, 시쳇말로 개 같은 기분이 그때는 절실히 통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하라 료의 경우는 어떨까. 나는 그에게 원한 감정 비슷한 무언가가 있다. 억하심정이라 하는 편이 .. 더보기
『미국의 송어낚시』 리처드 브라우티건 (비채, 2013) 미국의 송어낚시 - 리차드 브라우티건 지음, 김성곤 옮김/비채 내가 아는 어떤 남자는 『미국의 송어낚시』를 읽으면 이 노래가 생각난다고 했다. 란 제목의 이 곡은 피노체트 쿠데타 이후 칠레 민중의 저항 가요로 널리 불린 노래다. 뜬금없는 소리라고 여겼다. 그러나 그로부터 발음하기도 힘든 노래 제목을 들은 이후, 나는 줄곧 이 곡을 mp3플레이어에 넣어서 듣곤 했다. 개정판으로 출간된 브라우티건의 소설을 새로이 읽으니 어딘지 모르게 그 남자의 기분을 알 것 같기도 하다. 인텔리겐치아나 혁명 따위의 단어를 늘어놓지 않더라도, 이 작품이 실은 전혀 목가적이지 않다는 것을 저 칠레 민중의 노래가 반증하고 있으므로. 더군다나 여기에 시종일관 간섭하는 것이 바로 '송어(낚시)'의 정체와 의미인 것인데, 어쩌면 이탈..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