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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납관부 일기』 아오키 신몬 (문학세계사, 2009) 일본 영화 최초로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받은 《굿 바이》의 원작이라는 카피가 써진 띠지가 있긴 한데, 그건 버린지 오래라 잘 모르겠고 관심도 없다. 이걸 어떻게 영화로 만들었는지 찾아보진 않았지만 별로일 것 같은 기분이다. 『납관부 일기』는 그것 그대로 존재하는 게 낫다, 는 게 내 생각이다. 과거 학창시절에 영안실에서 염(殮)을 하는 아르바이트를 해볼까 했었다. 내 기억으론 시신 하나에 13만원이란 돈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결국 하지 못했다. 완력에도 소질이 없고, 강심장이기는커녕 비리비리한(지금도) 학생이어서 좀처럼 그런(!) 일은 할 수 없었다. '태연하게 죽는 것'은 가능할지 몰라도 '태연하게 사는 게' 가능하려나. 이 책을 읽은 뒤 계속 생각하고 있다. 사자(死者)를 대하면 생자(生者)의.. 더보기
『흑백』 미야베 미유키 (북스피어, 2012) 이를테면 텍스트와 서브텍스트의 맞물림. 그거다. 미스터리나 이런 괴담이 갖는 강력한 헤게모니는 현실에서 느끼는 두려운 마음을 일종의 (설명하기 힘든) 형태로 만들어준다는 것에 있다고 여기고 싶다. 뭔가를 맞닥뜨리고 인식하고 재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단숨에 퓽, 하고 쏟아내는 거다. 어떤 생각들을 전부 마음에 넣어 뚜껑을 닫아버리면 그만이지, 하고 쉬이 치부할 수 없다. 뭔가를 말한다는 것은 짐을 내려놓는다는 뜻도 될 수 있으며, 타자에게 마음을 내비침으로써 그 두려움이 내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재확인할 수도 있는 까닭이다. 마지막 이야기 「이에나리(家鳴り)」에서 저택을 지키는 관리인 ㅡ 왠지 웃을 수만은 없는 ‘끝판 왕’ 같은 느낌인 걸 ㅡ 이 저세상과 이 세상을 잇는 길목에서 손님을 맞이한다는 것을 이 .. 더보기
『그리고 죽음』 짐 크레이스 (열린책들, 2009) 제목을 보자. 니콜라스 네그로폰테의 『디지털이다(Being Digital)』, 영화 《존 말코비치 되기(Being John Malkovich)》 그리고 짐 크레이스의 『그리고 죽음(Being Dead)』. 모두 ‘being’이 들어있으니 이것은 네그로폰테의 저서처럼 ‘죽음이다’라고 옮길(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럼 ‘그리고’ 앞에는 뭐가 있을까. (아마도)삶이겠지. 그럼 ‘그리고 죽음’이 아니라 ‘죽음 그리고’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어차피 죽음 뒤엔 삶이고, 삶 뒤엔 죽음이니까 ㅡ 이런 식으로 하다 보면 ‘그리고 죽음’은 ‘죽음이다’, ‘삶이다’, ‘그리고 삶’ 또는 ‘그러나 삶’으로 바꿀 수 있다(말장난이 아니다). 드넓은 바다 전체를 소리로 바꾸어 버리는 해저 동굴처럼 노래할 수 있는 남자와,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