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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씹어야제맛이지

『조이랜드』 스티븐 킹 (황금가지, 2014) 조이랜드 - 스티븐 킹 지음, 나동하 옮김/황금가지 스물하나의 어린 애새끼가 겪은 여름날의 추억인지 아니면 살인 사건을 다룬 스릴러인지 갸우뚱하게 되지만 나는 전자의 손을 들어준다. 그렇게 하고 싶다. 킹의 작품을 많이 읽어 본 것은 아니지만 『조이랜드』는 은근히, 손에 쥐었다고 설명하기 힘든 흐릿한 서사로도 독자의 집중력을 끌어올리고 있는데, 이 소설은 이렇게만 끝을 맺어서는 말이 되질 않는다. 이시다 이라의 를 읽은 사람이라면 『조이랜드』가 풍기는 냄새를 어림짐작할 수 있을까. 좀 알려주길 바란다. 서지정보에 의하면 어쩐지 비스름한 느낌일 것 같으니. 즐거움을 판다는 다소 키치한 슬로건으로 무장한 놀이공원 조이랜드에서 파트타임을 시작한 데빈 존스는, 흔히 '성장소설'의 ㅡ 나는 『조이랜드』를 성장소설.. 더보기
『폼페이』 로버트 해리스 (RHK, 2007) 폼페이 - 로버트 해리스 지음, 박아람 옮김/랜덤하우스코리아 피스키나 미라빌리스, 기적의 저수지. 도시 한 블록 정도의 길이에 반 블록 정도의 폭을 지닌, 낮고 평평한 지붕의 붉은 벽돌 건물로 연녹색의 담쟁이덩굴이 덮인 거대한 지하 저수조. 그럼에도 불구하고(그렇기 때문에야말로) 언제나 부패에 노출되어 있는 수로교는 ㅡ 살베 루크룸! 루크룸 가우디움!(수익이여, 어서 오라! 수익은 기쁨이다!): 이는 「토할 때까지 먹고 먹을 수 있을 때까지 토하자」는 세네카의 말과 궤를 같이하는가? ㅡ 다종다양한 군상을 탄생시키며 폼페이를 만신창이로 만들어버렸다. 아니, 실로 후자의 경우는 자연이 내린 메시지라고 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자연이 인간에게 내린 최고의 선물은 짧은 생이다. 감각이 둔해지고, 팔다리가 마비.. 더보기
『노예 12년』 솔로몬 노섭 (열린책들, 2014) 노예 12년 - 솔로몬 노섭 지음, 오숙은 옮김/열린책들 12년 동안 '인간에 대한 인간의 잔인함(man's inhumanity to man)'이 무엇인지를 노예 플랫은 분명히 알게 되었을 것이다. 자유인이었으나 꾐에 넘어가 납치되어 노예가 된, 칼과 포크를 대신해 제 검은 손가락으로 음식을 취해야만 했던 플랫. 그는 워싱턴의 윌리엄 노예수용소, 리치먼드의 구딘 수용소, 뉴올리언스의 프리먼 수용소 ㅡ 제 소유의 동물들 앞에 나와 명령하는 운영자들 ㅡ 를 거쳐 드디어 자신을 구입한 이에게 '팔리게' 된다. 공식적인 첫 주인 윌리엄 포드를 비롯해 존 M. 티비츠, 그리고 난폭하고 무례한 힘, 교양 없는 머리, 탐욕스러운 정신의 결함으로 무장한 에드윈 엡스까지(채찍, 등을 홧홧하게 만드는 그 빌어먹을 채찍!).. 더보기
『풍아송』 옌롄커 (문학동네, 2014) 풍아송 -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문학동네 양커는 아내 자오루핑이 리 씨 성을 가진 그 빌어먹을 작자와 몇 번이나 잠자리를 했는지, 집뿐만이 아니라 그의 거처에 가서도 일을 치렀는지, 그는 나보다 나이도 많은데 어떻게 절정을 느끼게 해주었는지, 그 오르가즘은 어떠한 유형이었는지 따위를 걱정한다. 그는 공자가 채록했다고 알려진 『시경』을 연구해 그 성과를 인정받고 싶어 하지만 양커의 그러한 노력과 정신은 곧 강탈당하고 오래 지나지 않아 모래먼지 폭풍 사건에 휘말려 정신 이상자로 몰리고 만다. 하지만 정신병원 원장실에는 올라타면 쉬지 않고 달려야만 하는 특수 전기치료기, 환자를 원하는 대로 움직이게끔 고안된 장치가 마련되어 있었으므로 양커는 한 번 더 무릎을 내어주며 ㅡ 아내의 간통을 목도했을 때 쏟아내.. 더보기
『겨울 일기』 폴 오스터 (열린책들, 2014) 겨울 일기 - 폴 오스터 지음, 송은주 옮김/열린책들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당신은 그런 일이 당신에게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일어날 리 없다고,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일어나도 당신에게만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여기에 이어질 내용으로 나는 다음과 같은 문장을 만든 바 있다. 「겨울철 빙판이 되어버린 2차선 도로에서 한바탕 신 나게 구른 뒤, 기어 봉에 눈두덩을 찧어 의안을 착용하게 된 달갑지 않은 사건만 하더라도 어떤가. 보라, 결국 그렇게 될 일은 일어나기 마련이다.」 우습지만, 당연하게도 『겨울 일기』에 이러한 잔인함은 없다. 사실 잔인한 묘사가 없을 뿐이겠지만. 이것을 쓰는 것이 여타 소설에 손을 대는 것보다 몇 갑절은 더 힘들었을 걸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ㅡ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