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의 우주』 움베르토 에코, 장클로드 카리에르 (열린책들, 2011) 움베르토 에코와 장클로드 카리에르의 대담집. '책은 죽지 않는다' 라는 권두 대담으로 시작하긴 하지만 그들 스스로도 인간 수명의 불로장생을 의심하고 안타까워하는 마음에서인지 책의 마지막은 '죽고 나서 자신의 서재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물음으로 끝난다. 인터넷 때문에 통제할 수 없는 기억이 우리 수중에 들어오게 된 이 상황에서, 각 문화는 무엇을 간직해야 하며 무엇을 잊어버려야 할지 우리에게 말해 줌으로써 여과 작용을 한다고는 하지만, 과연 책 또한 그러한가? 책은 단지 하나의 용기(容器)일 뿐 아니라, 그것으로부터 모든 것을 관찰하고 모든 것을 이야기할 수 있는, 어쩌면 모든 것을 결정할 수도 있는 '위대한 시각'이었습니다.ㅡ 카리에르 지금의 책은 과연 천대를 받고 있는가. 예스라는 대답이라면 왜.. 더보기
『아Q정전』 루쉰 (열린책들, 2011) 루쉰의 단편 「아Q정전」은 그 제목의 유사함 때문에 영화 《아비정전(阿飛正傳)》을 생각나게 한다. 그러나 《아비정전》의 마지막 대사, 그리고 나아가(또 한번의 유사성 때문에) 《버디(Birdy)》에서의 새가 되어 날고자 하는 열망을 돌이켜보자면 루쉰의 그것과 닮은 구석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겠다. 이 루쉰의 중단편집에 15편이나 되는 작품이 담겨 있다고 해도 유독 「아Q정전」을 언급하고, 눈여겨보고, 곱씹어보는 등의 노력을 하는 것은 어쩌면 그런 연유에서일지도 모르고, 과도한 통속성을 지니지 않았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서, 혹 아니면, 「자네들은 입안에 독을 뿜는 이빨이 없는데도 어째서 이마에 '독사'라는 두 글자를 크게 써 붙이고 거지들을 끌어들여 때려죽이려 하는가?」하고 침울.. 더보기
『어머니』 막심 고리끼 (열린책들, 1989) 이야기는 1부와 2부로 나뉘어 각각 빠벨의 집과 니꼴라이의 집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어머니는 빠벨, 안드레이, 니꼴라이처럼 지성은 없지만 모성애의 발로로 인해, 그리고 세상의 아들들을 사랑하는 마음의 확대로 혁명운동에 동참하면서 대중의 관심을 받는다(여기서 전태일이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연결고리로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런 일일 거다). 『어머니』에서 노동자촌의 사람들은 전태일과 닮았거나 85호 크레인 위에서 모진 바람을 맞는 이들과 같거나 둘 중의 하나다. ① 그래서 그들의 삶은 슬프고 「맞기 전에 먼저 상대편을 때려눕히려고 애를 쓰는 겁니다.」 (p.68) ② 때로는 격하고 「난 마치 칼처럼 온몸을 던져서 그 놈을 찌를 거야.」 (p.79) ③ 때로는 이성 적으로 「정의란 단순히 위.. 더보기
『좀머 씨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열린책들, 1992) 좀머 씨 이야기 -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열린책들 기억력이 아무리 나빠졌다 해도_좀머_라는 단어는 잊히지 않는다. 쥐스킨트 = 아이_쥐스킨트 = 좀머_∴아이 = 좀머_라는 등식. 재미있는 건, 읽으면 읽을수록 나에게 투영시키는 대상이 아이에서 시작해 서서히 좀머로 변해간다는 점. 더보기
『장미의 이름(전2권)』 움베르토 에코 (열린책들, 2000, 신판) 알다시피 세상 모든 건 점, 선, 면, 체를 이루며 움직인다. 그러나 누군가의 말대로 기억이란 콩나물 비빔밥 같아서 나는 무엇이 어떤 점이었는지 뭐였는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비록 스트레스 해소와 데시벨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는 모르지만, 장서관 미로의 비밀을 알아냈을 때 윌리엄의 외침은 점, 선, 면, 체 모두를 꿰뚫는 환희의 데시벨, 그것이었으리라 ㅡ 화국和局으로 끝나버리고 말았던 애매모호한 장서관의 여행, 그리고 쾅, 머리를 뒤흔듦, 이것들을 생각해보라 ㅡ 마치 여유로움의 벼락부자가 된 듯이. 에코의 다른 저작에서도 '집단에서 함께 오줌을 누지 않는 사람은 도둑이거나 간첩'이라 하지 않았나. 이것으로 보건대 당시 윌리엄은 이루 말 할 수 없는 환희에 찬 지식의 도둑이었음에 틀림없다. 단순한 추리 소설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