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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트로 마니아』 사이먼 레이놀즈 (작업실유령, 2014) 레트로 마니아 - 사이먼 레이놀즈 지음, 최성민.함영준 옮김/작업실유령 레트로가 느슨한 용법으로 정의 내려져 사용되는 현상(반드시 그렇다고는 단정할 수 없겠지만)은 꼴사납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고, 또 낡아 보이기도 하고, 또 친숙/편안하기도 하다. 추억 팔이(재탕)냐 재해석이냐 하는 건 자정(自淨)될 수 있다고 본다. 뭐든지 극에 달하면 순환과 여과의 과정을 거치기 마련이니까. 어쨌든 과거, 회귀, 추억, 회상 등의 측면으로 보자면 '옛것'의 쓰임새는 상당히 다종다양해진 동시에 여러 방면으로 흘러넘친다. 이를테면 광고음악으로 7, 80년대 음악을 차용해 코믹한 분위기를 연출한다든지, 예전의 향수를 자극할 심산으로 만들어진 영화가 흥행에서 좋은 반응을 얻는다든지ㅡ 아니면 대놓고 과거를 외친다거나 하.. 더보기
『전진하는 진실』 에밀 졸라 (은행나무, 2014) 에밀 졸라 : 전진하는 진실 - 에밀 졸라 지음, 박명숙 옮김/은행나무 1902년 10월 5일, 에밀 졸라가 몽마르트르 묘지에 묻히기 직전 아나톨 프랑스(Anatole France)는 아직 뚜껑을 닫지 않은 묘혈 앞에서 그를 떠나보내며 추도사를 낭독했다. 「……그를 부러워합시다. 그는 어리석음과 무지와 사악함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모욕의 더미 위에 모두가 우러러볼 높다란 영광의 탑을 우뚝 쌓아 올렸습니다 (...) 그를 부러워합시다. 그의 운명과 그의 용기는 그를 가장 위대한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는 인간적 양심의 위대한 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죽는 순간까지 졸라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그의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가해진 크고 작은 테러와 살해 위협으로 미루어보건대ㅡ 졸라의 죽음이 정치적 타살이라.. 더보기
『도쿄 기담집』 무라카미 하루키 (비채, 2014, 개정판) 도쿄 기담집 -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비채 노골적으로 '우연'에 집착한 「우연 여행자」를 시작으로 다섯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노골적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개인적으로 내 취향과는 동떨어져 있기 때문인데, 그에 반해 「하나레이 해변」이나 「시나가와 원숭이」는 꽤 괜찮았다. 하나레이 해변에서 상어에게 오른쪽 다리를 물어뜯겨 죽은 아들의 어머니의 시선으로 진행되는 「하나레이 해변」은 유독 그 색감 때문인지 시종일관 우울한 기운이 틈입할 여지를 주지 않는다ㅡ 막바지에 다다라 '외다리 서퍼'의 목격담이 등장해도. 주인공 사치(어머니)는 하나레이에 집착하고, 서핑을 하려는 젊은이 두 명과 조우한다. 그녀는 그들에게 이런저런 도움을 주지만 외려 어드바이스를 받아야 할 것은 그녀 자신이며, 아무것도.. 더보기
『매트릭스로 철학하기』 슬라보예 지젝 외 (한문화, 2003) 매트릭스로 철학하기 - 슬라보예 지젝 외 지음, 이운경 옮김/한문화 뭐, 좀 키치할 수도 있고 동어반복일 수도 있다. 영화에 등장하는(숨겨진) 아주 작은 코드를 언급하지 않은 것에서(놓친 것일까?) 배신감을 느낄지도 모르고. 그렇지만 우리를 미치도록 궁금하게 만드는 것들을 설명해보려는 시도는 얼마나 흥미로운 일인가(물론 우리 역시 매트릭스에 갇혀있다면 아무리 이런 논의를 해도 그 기계들은 코웃음을 흘리고 있을 테지만)ㅡ 토머스 앤더슨/네오와 사이퍼(배신자)가 공존하는 이 미망(迷妄)의 현실세계에서 말이다. 이를테면 네오의 매트릭스 안에서의 이름 토머스/예수의 부활에 의구심을 갖는 제자 '의심하는 토머스', 탯줄 같은 케이블을 뽑아내고 미끄러져 내려오는 네오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사육된다'는 점에서의 .. 더보기
『영국식 살인의 쇠퇴』 조지 오웰 (은행나무, 2014) 영국식 살인의 쇠퇴 - 조지 오웰 지음, 박경서 옮김/은행나무 나폴레옹과 빅 브라더에만 급급했던 지난날. 이 책은 오웰의 과거 이런저런 에세이를 묶은 책에 포함되었던 글이 중복되기도_심지어 수록된 각각의 글들은 그 성격이 일관성 있게 구분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얽히고설켜 중구난방의 편집을 자랑한다. 그러나 오웰은 맨 정신으로는 도저히 살 수 없는 인간들을 그림으로써 독자들에게 투쟁의 대상을 심어주었고, 이 세계를 둘러싼 현상을 파악하고 문제점을 짚어내는 것에 자질이 있었으며,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까지 터득했다. 소위 문학성이 담보된 글을 통해 우리로 하여금 환멸에의 각성을 꾀하도록 도왔다. 우리는 이 책에 대해 그저 '오웰'이라는 단어 자체를 읽어낼 뿐.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