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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차가운 밤』 바진 (시공사, 2010) 흉측한 악마에게 들씌워져 어딘가에서 지시를 받듯 그런 상태가 된 시대. 실재하는 것은 무엇인지, 신은 정말 죽은 것인지(이전에 '살아 숨쉬고' 있었다면), 왜 항상 왕원쉬안은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 것인지, 과연 왕원쉬안과 수성과 어머니는 과연 선한지, 악한지, 해는 어째서 밤이 되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지(곤두박질치는지), 그리고 왕원쉬안은 왜 수성과 헤어졌으며 왜 회사에서 해고되었는지, 또한 끝에 수성(왕원쉬안)은 이미 없는데 왕원쉬안(수성)은 왜 여기에 있는 것인지. 낯선 인간들, 낯선 거리, 낯선 감각, 낯선 승전보 ㅡ 심지어 냄새까지도 낯설다. 그러나 결국 인물들은 시시각각 첨벙대는 속물이다. 그들은 그런 속물인 채로, 지금, 이상한 나라에서 살고 있다 ㅡ 아니, 이상한 방에 갇혀서 시간을 보내.. 더보기
『통의동에서 책을 짓다』 홍지웅 (열린책들, 2009) 1월 12일, 3월 23일, 3월 28일만 빠진 2004년 365일의 기록. 이 일기를 몇 번의 호흡에 읽었는지 확인해보니 책 귀퉁이가 총 11번 꺾여 있다(나는 가름끈이 없는 책은 접으며 읽는다). 징글징글하다. 괴상하다면 괴상한 취미겠지만(?) 나는 음반 한 장을 사도 executive producer, producer, co-producer, directer, composer 등을 누가 담당했는지 확인해보곤 한다. 책도 마찬가지(이 책의 발행인은 당연히 홍지웅). 그래서 과거의 어느 날엔가 웹을 검색해 저자의 이야기가 실린 80년대 후반과 90년대의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그 땐 장발이었다. 『통의동에서...』는 장발의 저자와 그렇지 않은 저자 사진이 모두 있다. '열린책들'의 사무실이나 책들 사진.. 더보기
『삶과 죽음의 시』 아모스 오즈 (열린책들, 2010) 아모스 오즈의 『삶과 죽음의 시』. 머리가 아프다. 상상인지 현실인지 심지어 아직도 모르겠다. 아직도 상상인지 모르겠다. 현실인지 심지어 모르겠다. 모르겠다 나는 심지어 아직도. 주인공 '저자'가 뿜는 끝없는 상상의 똬리는, 도중에 멈출 수 없는 사정(射精)과도 같이 거침이 없다. 그런데 실제 ㅡ 실제라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가 하면, 나는 심지어 아직도 모르겠다! ㅡ 로는 세피아 빛 사진의 시대에서 온 사진사처럼 셔터를 눌러 유령으로 바뀐 것인지도 모른다(p.128). 마술적 허구주의나 난폭한(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낀다) 텍스트는, 이 작품을 더욱 가볍거나 더욱 무겁게 혹은 대상을 관통하거나 속박된 시(詩)를 표방한다 ㅡ 영화 《스내치》에 등장하는 후, 하고 불면 사라지는 브릭탑의 돼지우리처럼. 아니.. 더보기
『수도원의 비망록』 주제 사라마구 (해냄, 2008) 불구가 된 남자와 투시력을 가진 여자. 왕을 설득하여 수도원을 건립하려는 수도사들. 그리고 '인간의 의지' 파사롤라. 몸 한가운데의 검은 구름인 '의지의 영혼'을 병에 담아 모을 수 있는, 투시력을 가진 블리문다와 비행 물체 파사롤라를 타고 9년 동안 ㅡ 불완전함, 완벽한 절정의 모호한 의미의 숫자 9 ㅡ 사라졌던 그녀의 남편 발타자르의 사랑. 수도원의 건축을 요구하는 종교인들의 얄팍함. 바보 같은 젊은 왕의 바보 같은 행적들. 하늘을 날지만 그것으로 추락하는 바르톨로메우 로렌수 신부의 '인간의 의지.' 이 모든 것들은 로렌수 신부의 '에트 에고 인 일로(et ego in illo : 나는 그의 품 안에 있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한다 ㅡ 종교적 신성이든 비수를 꽂는 풍자든. 왜냐하면 지구가 돌고 돌듯이.. 더보기
『영원한 친구』 존 르 카레 (열린책들, 2010) 이 작품을 읽기 위해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를 먼저 읽었다. 2001년에 구입해 놓고 먼지만 쌓여 있던 그 책은 정말 '최고'였다(『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까지 마저 읽고 『영원한 친구』를 읽는 게 낫지 않았을까?). 확실히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보다는 전체적으로 이완된 느낌이지만 원숙미는 더욱 심화되었다. 몰락한 첩보원의 인상을 받았다고나 할까. 처음 다소 밋밋하다고 느껴지는 찰나 서서히 시작되는 절박함이 드러난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과, 과거에 '일어났던 것'을 풀어놓는 방법은 형식적 틀과 시선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ㅡ 그러나 역시 자꾸만 『팅·테·솔·스』를 읽지 않았다는 게 마음에 걸린다. 아마 영영 안 읽는다면 언젠가는, 주인공 먼디가 베를린에서 만난 그..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