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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전화』 로베르토 볼라뇨 (열린책들, 2010) 어디선가 등장하는 현재시제의 문체는 날것 그대로의 표현이며, 책을 이루고 있는 것은 전체적으로 불안한 영혼들의 불완전한 이야기. 옆구리를 툭 치면 활자화된 단어들이 눈에 보이게 우수수 떨어질 것만 같은 작가, 로베르토 볼라뇨의 단편집 『전화』. 그런데 아뿔싸, 나는 절대 함정에 걸려들면 안 된다고 다짐하면서도 그에게 빈틈을 보이는 빌미를 제공하고 만다. 그의 언어는 포물선을 그리며 도망갈 틈을 주는 것이 아니라 곧바로 머리 위를 향해 내리꽂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어느 글에서 영화감독 김기덕이 '나 역시 누구나 쾌락을 추구할 수는 있지만 그 쾌락의 진원지가 상대방의 고통이 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해 왔다'라고 쓴 부분을 기억해내기에 이른다. 왜냐하면 『전화』에 등장하고 사라지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약속이나.. 더보기
『성 앙투안느의 유혹』 귀스타브 플로베르 (열린책들, 2010) '작품 해설'에서 언급하고 있는 ㅡ 작가의 친구인 막심 뒤 캉은 『성 앙투안느의 유혹』에 대한 회고에서, '그가 어디에 이르려는지 짐작할 수 없었고, 실제로 그는 어디에도 이르지 않았다 (...) 확장의 방식을 취했기 때문에 하나의 주제가 다른 주제에 흡수되며 이렇게 계속되기에 출발점을 잊게 된 거야' 라고 적고 있다. 부인할 수 없는 말이다. 『성 앙투안느의 유혹』을 읽고 난 후의 내 감정은, '너무 많은 것을 담고 있거나,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 했다'는 것이다. 작가는 (혹평때문이었을까, 스스로를 못 이긴 것일까) 초판(1849)을 집필하고도 후에 두 번이나 개작했다고 하는데 ㅡ 그런데 ㅡ 어째서 국내 번역으로 이 초판을 택했을까. 대체 무슨 이유에서였을까(이 의문은 나중에 풀린다). '유혹'은 처.. 더보기
『서부 전선 이상 없다』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열린책들, 2009) 이 작품의 의 배경이 된 세계대전이나, 세상의 모든 전쟁, 총싸움, 전쟁을 그린 영화나 책, 정치적 입장 등은 뒤로 놓고, 오직, 이 『서부 전선 이상 없다』만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 강철 같은 청춘. 청춘이라! 우리는 모두 채 스무 살도 되지 않았다. 그러나 어리다고? 청춘이라고? 그건 다 오래전의 일이다. 우리는 어느새 노인이 되어 있는 것이다. ㅡ 본문 p.22 정말 그들은 노인이 된다. 그러나 사실 그들은 더 살고 싶다. 그들은 참호 안에서 느낀다. 시체의 영혼을 빨아들인 밤안개가 내일은 적의 포탄을 몰고 올거라는 것을. 그리고 바람을 타고 오는, 어딘가에 쓰러져 있는 아군 병사의 신음 소리를 듣는다. 왜 전쟁이 일어난 거지? 어째서 내가 여기서 총을 들고 있어야 하지? 대체 왜 땀으로 가득찬 .. 더보기
『알코올』 기욤 아폴리네르 (열린책들, 2010) 기욤(Guillaume apollinaire) ㅡ 아폴리네르라 하기엔 너무 길고 힘이 드니 개인적인 편의상 기욤이라 하겠다 ㅡ 의 『알코올』은 전반적으로 '자정에 가까운 때'의 느낌이다. 그러나 그 자정을 넘기진 않는다. 그것은 내일이 오지 않을 것 같은 어스름함이다. 사실 모든 문학이란 (어느 정도는) 모호하게 써놓고 심오하게 느껴지기를 바라는 조악한 심보를 잉태하고 있다, 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어쩌면 문학은 그럴 수 있고, 또 그러한 것이 필요할 때가 있는 법이라고도 생각한다. 시 ㅡ 를 비롯한 문학 ㅡ 는 읽는 이에 따라 얼마든지 그 전달의 효용과 수용의 반응이 다른 것 아닌가. 이런 측면에서 그의 시들은 공작의 화려한 깃털만큼이나 깊이를 달리 한 서사와 사유의 흐름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이.. 더보기
『허클베리 핀의 모험』 마크 트웨인 (열린책들, 2010) 이 작품의 쌍둥이 격인 『톰 소여의 모험(the adventures of tom sawyer)』은 언급하지 않는다. 헉은 아버지에게서 도망치고 도중에 흑인 노예 짐을 만나 함께 강을 타고 모험을 한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서 우리는 실로 다양한 인간 군상을 관찰할 수 있으며 작가 마크 트웨인(본명은 아니지만)의 섬세한 연출력을 발견할 수 있다. 역자가 쓴 것처럼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작품의 플롯이나 주제보다는 헉이라는 인물 자체가 매력적이다. 기성세대는 그들의 가치관이 비틀렸다고 여길 수도 있지만 헉은 그가 '온몸으로' 겪은 것들을 '온몸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 에는 정말이지 셀 수도 없는 인물들이 등장했다 사라진다. 헉과 짐을 비롯해 톰, 하퍼, 벤, 토미, 왓슨 아줌..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