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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 조지 오웰 (펭귄클래식, 2008) 러시아의 스탈린은 언급하지 않아도, 그리고 그 상황과 들어맞고 있어도 『동물농장』은 자체로서 매력적이고 흥미로운 요소들을 충분히, 너무 많이 갖추고 있다 ㅡ 이야기는 진행되면서 계층이 나뉘고, 그 계층은 또 다른 단계로 구분되어진다. 혁명의 슬로건 아래 두 젊은 수퇘지 스노볼과 나폴레옹, 그리고 복서라는 말(바보스럽게 충성스런)로 표현되는 그들의 동물농장은 원초적인 불편함을 탐구하며 무서운 진실과 힘을 역설해준다 ㅡ 결말에서 돼지의 얼굴과 인간의 얼굴이 섞여지는 장면은 클라이맥스이자 새로운 동물농장의 출발이 된다. 또한 지극히 민주주의적인 다수결이지만 그것은 무지의 다수이며(왜 '평화의 댐'이 떠오를까), 죽음을 앞둔 돼지 메이저의 꿈에서 시작되는 혁명이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게도 불쾌한 혁명이 되고 만.. 더보기
『어느 작가의 오후』 페터 한트케 (열린책들, 2010) 펜을 놓고 뒷짐을 지고 있을 때 비로소 창작을 한다. 그리고 사유한 것을 정리하지 않고 그대로 텍스트화한다. 작가로서의 나와 나로서의 작가, 외부와 내부, 의자에 앉아 있는 것과 길을 걷는 것 사이의 공명에서 아름다운 ㅡ 치밀하고 고뇌적인 ㅡ 묘사로 풀어지는 또 한 번의 사유. 왜 사유와 텍스트가 동일한가. 왜 사유하는 것이 정제의 작업을 거치지 않은 채 그대로 활자화되는가. 왜 무엇인가 눈目에 들어오기가 무섭게, 대상을 지각하는 것이 아니라 사유의 흐름이라는 물줄기를 만나는가. 소설 속의 주인공 작가는 ㅡ 텍스트 바깥의 실제 작가는(어느 쪽을 실체라 할 수 있을까?) ㅡ 구경꾼이 되었다가 방랑자가 되고 다시 작가로 돌아온다. 그러나 이 작가는 여전히 이다. 그는 여전히 바깥과 안을 구분하지 못하고, 나.. 더보기
『햄버거에 대한 명상』 장정일 (민음사, 2002) 햄버거에 대한 명상 - 장정일 지음/민음사 고삐리 시절 처음 읽은 뒤 이상하리만치 기억에 또렷이 남아 다시 구입_거의 10년 만에 다시 느끼는 『햄버거에 대한 명상』에 대한 명상. 어떤 말로 표현해도 항상 '과잉'이란 단어를 붙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작품들. 우월감과 열등감_주저하게 만드는 것들_해체와 파괴_미끄덩거리는 싼 티_쓰레기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재치_세상 끝남에 대면한 어린이_정신병과도 같은 이율배반_뷰티풀 판타지에 대한 찬양_그리고 개새끼/개새끼들. 더보기
『전화』 로베르토 볼라뇨 (열린책들, 2010) 어디선가 등장하는 현재시제의 문체는 날것 그대로의 표현이며, 책을 이루고 있는 것은 전체적으로 불안한 영혼들의 불완전한 이야기. 옆구리를 툭 치면 활자화된 단어들이 눈에 보이게 우수수 떨어질 것만 같은 작가, 로베르토 볼라뇨의 단편집 『전화』. 그런데 아뿔싸, 나는 절대 함정에 걸려들면 안 된다고 다짐하면서도 그에게 빈틈을 보이는 빌미를 제공하고 만다. 그의 언어는 포물선을 그리며 도망갈 틈을 주는 것이 아니라 곧바로 머리 위를 향해 내리꽂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어느 글에서 영화감독 김기덕이 '나 역시 누구나 쾌락을 추구할 수는 있지만 그 쾌락의 진원지가 상대방의 고통이 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해 왔다'라고 쓴 부분을 기억해내기에 이른다. 왜냐하면 『전화』에 등장하고 사라지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약속이나.. 더보기
『성 앙투안느의 유혹』 귀스타브 플로베르 (열린책들, 2010) '작품 해설'에서 언급하고 있는 ㅡ 작가의 친구인 막심 뒤 캉은 『성 앙투안느의 유혹』에 대한 회고에서, '그가 어디에 이르려는지 짐작할 수 없었고, 실제로 그는 어디에도 이르지 않았다 (...) 확장의 방식을 취했기 때문에 하나의 주제가 다른 주제에 흡수되며 이렇게 계속되기에 출발점을 잊게 된 거야' 라고 적고 있다. 부인할 수 없는 말이다. 『성 앙투안느의 유혹』을 읽고 난 후의 내 감정은, '너무 많은 것을 담고 있거나,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 했다'는 것이다. 작가는 (혹평때문이었을까, 스스로를 못 이긴 것일까) 초판(1849)을 집필하고도 후에 두 번이나 개작했다고 하는데 ㅡ 그런데 ㅡ 어째서 국내 번역으로 이 초판을 택했을까. 대체 무슨 이유에서였을까(이 의문은 나중에 풀린다). '유혹'은 처..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