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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의 비망록』 주제 사라마구 (해냄, 2008) 불구가 된 남자와 투시력을 가진 여자. 왕을 설득하여 수도원을 건립하려는 수도사들. 그리고 '인간의 의지' 파사롤라. 몸 한가운데의 검은 구름인 '의지의 영혼'을 병에 담아 모을 수 있는, 투시력을 가진 블리문다와 비행 물체 파사롤라를 타고 9년 동안 ㅡ 불완전함, 완벽한 절정의 모호한 의미의 숫자 9 ㅡ 사라졌던 그녀의 남편 발타자르의 사랑. 수도원의 건축을 요구하는 종교인들의 얄팍함. 바보 같은 젊은 왕의 바보 같은 행적들. 하늘을 날지만 그것으로 추락하는 바르톨로메우 로렌수 신부의 '인간의 의지.' 이 모든 것들은 로렌수 신부의 '에트 에고 인 일로(et ego in illo : 나는 그의 품 안에 있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한다 ㅡ 종교적 신성이든 비수를 꽂는 풍자든. 왜냐하면 지구가 돌고 돌듯이.. 더보기
『영원한 친구』 존 르 카레 (열린책들, 2010) 이 작품을 읽기 위해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를 먼저 읽었다. 2001년에 구입해 놓고 먼지만 쌓여 있던 그 책은 정말 '최고'였다(『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까지 마저 읽고 『영원한 친구』를 읽는 게 낫지 않았을까?). 확실히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보다는 전체적으로 이완된 느낌이지만 원숙미는 더욱 심화되었다. 몰락한 첩보원의 인상을 받았다고나 할까. 처음 다소 밋밋하다고 느껴지는 찰나 서서히 시작되는 절박함이 드러난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과, 과거에 '일어났던 것'을 풀어놓는 방법은 형식적 틀과 시선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ㅡ 그러나 역시 자꾸만 『팅·테·솔·스』를 읽지 않았다는 게 마음에 걸린다. 아마 영영 안 읽는다면 언젠가는, 주인공 먼디가 베를린에서 만난 그.. 더보기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전2권)』 알프레트 되블린 (시공사, 2010) 여기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에서, 최인훈의 「광장」이나 현진건의 「술 권하는 사회」를 떠올릴 수도 있겠다. 물론 세상은 주인공 프란츠 비버코프에게 술이 아니라 '나쁜 일'을 권하긴 하지만. 무척이나 단속적이며 다채로운(이미지가 확연히 드러나는) 서술과 치밀한 연출력으로 의식의 대공황이 말 그대로 '공황적으로' 표현되었다고 할까 ㅡ 꼭 치아교정기를 낀 아이가 두서 없이 이야기하는 것만 같다. 그리고 주인공은 '반듯한 모자'를 써도(1권 p.103) 머릿속은 늘 흔들리며 부유한다. 도살장의 동물 숫자 : 돼지 11,543마리. 소 2,016마리. 송아지 920마리. 양 14,450마리. 한 방, 휙, 그들은 뻗는다. 돼지, 소, 송아지들이 도살당한다. 거기 열중할 이유는 없다. 우리는 어디 있는가? 우리는.. 더보기
『콘트라베이스』 파트리크 쥐스킨트 (열린책들, 2000) 콘트라베이스 연주의 그것처럼 포르테로 시작해서 피아노, 피아니시모, 그리고 메조포르테와 포르티시모를 넘나드는 정서의 변화가 강하게 느껴진다. 중학교 도서관에서 처음 보았지만 딱히 감흥이랄 것도 느끼지 못하고서 책을 덮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ㅡ 책이 무척이나 얇은 것이, 당시 나에게 강한 인상을 주었다. 스물을 갓 넘겼을 때 신판을 구입해 읽고, 또 읽고, 아무 페이지나 열어 읽었다. 그래도 항상 『콘트라베이스』가 내게 주는 정서는, 그 강약이 다르더라도, 시종일관 스산하고 휑뎅그렁한 어떤 것이었다 ㅡ '생각한다는 것은 아무나 심심풀이로 해보는 것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어려운 점이 많습니다.'(p.96) 콘트라베이스를 낀 사내는 결을 내기도 하고 맥주를 마시기도 하며, 지극히, 무척이나, 궁극의 평범한 ㅡ 고.. 더보기
『궁극의 리스트』 움베르토 에코 (열린책들, 2010) 출판사의 샘플 교정지를 본 게 지난 8월이었다. 그 때만 해도 『궁극의 리스트』가 이렇게 '징그러운' 책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맙소사!). 200점에 가까운 삽화와, 역시나 징그러운 뱀과 같은 인용 텍스트(인용문을 읽지 않아도, 인간이라면 응당 완벽하게 읽을 수 없으리라 확신하지만, 극악무도한 발췌로 인해, 아직 오지 않은 두려움에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그리고 저자가 밝힌, ㅡ 이 책은 '기타 등등'이라는 말로 끝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서문) ㅡ 시작부터 엄습하는 '궁극의 두려움.' ㅡ '기타 등등'이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축복인 셈이다. 바흐의 「무한히 상승하는 카논」이나 에셔의 판화 작품들을 생각해 보라. 『궁극의 리스트』는 리스트, 즉 '목록의 의미'를 탐구한다. 목록의 의미란 건 어쩌면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