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학의 아토포스』 진은영 (그린비, 2014) 문학의 아토포스 - 진은영 지음/그린비 내가 제대로 읽었다면 오웰의 문학과 정치적 태도에 대해 언급할 필요도 없을 듯하다. 문학과 예술을 정치와 한데 모아 버무리든 갈라놓든 상관없이 그것을 자양분으로 삼는 장소성은 중요하다. 물론 책에서는 아토포스를 끄집어내고 있으나, 비장소성을 이야기하려면 일단 그 비장소성이 가능한 공론장의 성격이 중요하다. 정말이지 아이러니한 메커니즘이다. 그리고 온갖 고유명사가 난립하는 글들을 읽을 때마다 나는 입말의 중요성과 파급력을 찾게 된다. 개개의 명사를 좋아하는 전문가나 평론가들이라면 모르나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했다면 친절함이 없는 글(문학, 예술)은 헛것이다. 그럼에도 책을 읽어보자면, 내가 보기엔 당분간은 정치적 사건을 일상적인 공간으로 데려오기는 힘들다. 반대도 마.. 더보기
『교장』 나가오카 히로키 (비채, 2014) 교장 - 나가오카 히로키 지음, 김선영 옮김/비채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지구대 이야기를 다룬 적이 있다. 물론 그쪽은 이미 임관이 완료된 순경의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라 『교장』과는 사뭇 다를 수 있다. 그렇다면 그 후 방영된 중앙소방학교의 이야기는 어떨까. 직업 자체는 다르지만 공무원을 '양성'한다는 점에서라면 이쪽과 접점이 있을 듯싶다. 군대에서와 마찬가지로 폐쇄된 공간에서의 규율과 반복되는 훈련. 무엇이든지 지시를 받아 행동해야 하는 그들은 빡빡한 일정에도 힘겨워한다. 소방학교에서 수십 킬로그램에 달하는 제복과 장비를 착용한 채 응급환자 처치와 이송, 모의 화재현장 실습 등을 경험한다면 경찰학교에서는 불심검문, 몽타주, 이륜면허 강습, 체포술 등을 훈련한다. 어느 쪽이나 위험이 따르는 것은 똑같다. .. 더보기
『미치광이 예술가의 부활절 살인』 해럴드 셰터 (처음북스, 2014) 미치광이 예술가의 부활절 살인 - 해럴드 셰터 지음, 이화란 옮김/처음북스(구 빅슨북스) 시간과 장소를 어떻게 볼 것인가. 사람 하나를 두고 어떻게 단정 지을 것인가. 이 두 가지는 인간이 가지는 인식을 고착화시키기에 적절한 관점이다. 과거에는 비난했을 어떤 행동이 오늘날 아무렇지 않게 통용되어 사회적 통념이라는 단어를 만들어내는가 하면 그와 정반대의 경우도 있다. 그리고 어느 쪽이건 그 사람들이 모인 여론과 더불어 언론의 역할 또한 작용하게 된다. 이 언론이란 것 역시 순기능과 역기능, 그러니까 그 촉매가 어떤 방식으로 작용하느냐에 따라 특정 사안의 양상은 완전히 뒤바뀔 수도 있다. 『미치광이 예술가의 부활절 살인』은 바로 그 언론의 '히스테리'를 주제로 삼고 있다. 희대의 살인 사건. 언론(은 물론이.. 더보기
『메이드 인 공장』 김중혁 (한겨레출판, 2014) 메이드 인 공장 - 김중혁 글.그림/한겨레출판 좀처럼 보기 힘든 뭔가를 가지고서 뚝딱뚝딱 만들어낸다. 그러면 그것은 우리가 너무나도 가까이 두고 사용하는 물건이 된다. 오늘날에는 'made in'이나 'manufactured in' 'OEM' 따위의 단어를 아무렇지 않게 이해할 수 있지만 과거엔 그렇지 않았다. 산업혁명 이후 줄기차게 공돌이, 공순이로 불리던 아버지세대의 차별적 언어습관은 지금껏 이어져오고 있는 것 같지만. 『메이드 인 공장』은 신문 연재 당시부터 꽤나 재미있게 읽었던 글이라서 (어쩌면 당연하게도)책으로 나오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물론 이 책도 책을 제작하는 '공장'에서 만들었겠지. 나무를 잘라 종이로 가공하고 거기에다가 잉크로 인쇄를 한 뒤 책등에 본드를 발라 겉표지를 붙여서는……. 맙.. 더보기
『적을 만들다』 움베르토 에코 (열린책들, 2014) 적을 만들다 - 움베르토 에코 지음, 김희정 옮김/열린책들 행복 공화국. 「속담 따라 살기」라는 글에서 에코가 만들어낸 유토피아다. 행복 공화국 사람들은 제목처럼 속담에 따라 행동하며 살았는데 의외로 무척 불행하게 살았다. '배가 익으면 스스로 떨어진다'고 했기에 농업에 위기가 왔다. '일을 급히 서두르면 망친다'는 속담에 따라 모든 차량이 금지되었다. 또 '뜨거운 물에 덴 사람은 찬물도 두려워하므로' 위생 개념이 희박해지기에 이르렀고 '흘러 지나간 물은 이미 소용없다'는 이유로 재활용 시스템이 금지되었다……. 에코는 이를테면 지난 수십 년간 진정한 적이 없던 모국 이탈리아를 불행하다고 적었다. 뉴욕에서 만난 파키스탄 택시 기사와의 대화에서 출발한 그는 키케로와 바그너, 초서, 보카치오까지 이야기를 몰고..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