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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이런 이야기』 알레산드로 바리코 (비채, 2014) 이런 이야기 - 알레산드로 바리코 지음, 이세욱 옮김/비채 죽는 것과 이름을 지어주는 것이 아마도 사람이 평생을 살면서 하는 일 가운데 가장 진지한 일(자동차에 이름을 붙이는 데에도)이라면, 울티모(마지막 사람)를 아이의 이름으로 낙점한 부모의 의중에는 신비스런 열의와 든든한 신뢰가 깃들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냄새의 자취에는 바람이 불지 않고 마음의 행로에는 질서가 없다. 울티모의 앞에는 구애되는 것이 없으며 그의 등 뒤에는 이미 걸어 온 곧게 뻗은 길과 위험한 굽이들이 있다. 「우리가 하는 일이란 그저 남들이 다 끝내지 못하고 남겨둔 일을 마무리하는 것이거나 다른 사람들이 우리 대신 마무리할 일을 시작하는 것에 지나지 않다.」(p.93) 소설에서는 엔진이 고장 나서 도로변에 차를 세운 레이서나 사고를 .. 더보기
신간마실 10 북로우의 도둑들 - 트래비스 맥데이드 지음, 노상미 옮김/책세상 유교의 정치적 무의식 - 김상준 지음/글항아리 수학의 역사 - 데이비드 벌린스키 지음, 류주환 외 옮김/을유문화사 저잣거리의 목소리들 - 이승원 지음/천년의상상 고사기 - 오오노야스마로 지음, 강용자 옮김/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2014 열린책들 편집 매뉴얼 - 열린책들 편집부 엮음/열린책들 이 상한 나라의 치과 -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지음/개마고원 국가를 되찾자 - 힐러리 웨인라이트 지음, 김현우 옮김/이매진 이대로 가면 또 진다 - 손석춘.지승호 지음/철수와영희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 - 최인기 글.사진/동녘 불량 제약회사 - 벤 골드에이커 지음, 안형식.권민 옮김/공존 낭비 사회를 넘어서 - 세르주 라투슈 지음, 정기헌 옮김/민.. 더보기
『자연을 거슬러』 토마스 에스페달 (열린책들, 2014) 자연을 거슬러 - 토마스 에스페달 지음, 손화수 옮김/열린책들 남자의 부엌에서는 언젠가는 싱싱했을 과실의 부패 과정을 지켜볼 수 있다. 탐스런 엉덩이처럼 생긴 복숭아는 거뭇한 반점이 생기며 썩어 문드러지기 시작한다. 그의 조리대는 이미 시체공시소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먹지 못하게 된 복숭아를 종국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별수 없이 버려야 할밖에. 거실에서건 욕실에서건 남자는 이제 혼자다. 누군가의 저택 대문에 기대어 서서 섹스에 몰두했을 때, 풍만함을 지나 점차 두루뭉술해진 여자의 몸을 보았을 때, 그녀의 몸에서 떨어져 내린 아이와 조우했을 때, 마침내 그녀가 죽었을 때, 그리고 복숭아가 썩어가는 것을 지켜보았을 때……. 남자는 천천히, 하지만 완벽하게 혼자가 된다. 젊음의 산물이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더보기
『현청접대과』 아리카와 히로 (비채, 2014) 현청접대과 - 아리카와 히로 지음, 홍은주 옮김/비채 소설에서 이야기되는 접대과, 정말 있었다. 고치 현청 홈페이지에 떡하니 '접대과'라는 링크가 있었던 거다. 그중 업무내용이란 항목이 있기에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그것은 대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관광객 접대, 관광지 미화 작업, 관광 가이드, 통역, 관광 안내 및 유도 표지 정비 등. 『현청접대과』의 무대는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것도 공공성을 표방한 관청이다. '접대과'라는 다소 솔직한 명칭의 부서가 신설되지만 도대체가 이곳에 소속된 사람들은 융통성이라고는 없다. 소위 철밥통 기질이 충만한, 보신적 내용만 가득 담긴 서류뭉치와 위계체계에 찌든 공무원들이 있을 뿐이다. 그들의 목표는 현의 관광 부흥. 그러나 야심적으로 시도한 관광 .. 더보기
『파계 재판』 다카기 아키미쓰 (검은숲, 2014) 파계 재판 - 다카기 아키미쓰 지음, 김선영 옮김/검은숲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무엇보다 속독과는 거리가 먼 내 습성을 우선 탓해야 할 테지만, 든든하게 저녁 식사를 하고 나서 잠이 들 때까지ㅡ 꼭 이 정도의 시간이라면 깔끔하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백 퍼센트 법정에서만 일어나는 일을 다루고 있으면서도 딱딱하게 굳은 느낌이 없고, 꽤 오래 전에 출간된 작품임에도 거리감이라고는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현직 판사(동시에 그는 추리 소설가이다)마저 어느 작품보다 실제에 가깝고 법적 오류 또한 전혀 없다고 하니 이야기의 무대만큼은 구조가 완벽한 셈이다. 한 남자가 법정에 섰다. 두 번의 살인과 두 번의 사체유기. 그는 앞서 발생한 사건에서의 사체유기 한 건을 제외하고는 자신의 죄를 부정한다. 소설은 법원..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