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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고메스의 이름은 고메스』 유키 쇼지 (검은숲, 2012) 고메스의 이름은 고메스 - 유키 쇼지 지음, 김선영 옮김/검은숲 박력 만점이다. 1960년대 베트남의 정치 상황을 배경으로 하는 스파이물인데 지금 읽어도 낡은 느낌이 전혀 없는 왕도라고 할까. 속도감도 대단해서 다 읽는 데에 한 시간이 좀 안 걸린 것 같다. 그만큼 텍스트를 읽는 것에는 불편함이 없다. 인물들의 개성도 잘 드러나 있고. 1차적인 발단은 동료의 실종이지만 그 후 주인공과 착각을 일으켜 대신 죽어간 남자의 한 마디가 소설을 이끈다. 「고메스의 이름은…….」 고메스? 이제야 탁월한 타이틀이 빛을 발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마이너스 인간들의 배신과 배신, 또 배신. 외려 천진난만하게까지 보이는 리엔의 육체가 베트남이란 덩어리와 겹쳐질 정도로 모리가키를 위시해 죽은 가토리, 토, 훈, 득 등은 .. 더보기
『인간의 조건』 앙드레 말로 (홍신문화사, 2012) 인간의 조건 - 앙드레 말로 지음, 박종학 옮김/홍신문화사 태생적으로 인간이란 고통으로서 자기 존재를 확인하려 한다, 고 하면 너무 무책임한 말이려나. 소설은 역사의 바퀴 속에서 버둥거리는 군상의 모습들을 보여주지만 초점은 나약한 개개인에 맞춰져 있다. '인간의 조건'에 어떤 존엄성이 있는가, 하는 질문은 끌어 안은 폭탄과도 같이 위험천만하게만 보인다. 역사책이 아닌 하나의 소설로 읽어야 하기에 인물들의 앙다문 입 속에 들어있는 테러, 인간, 고독, 탈출, 존엄, 노동자, 코뮤니즘 그리고 그(것)들의 조건은 비극의 끝자락에서 유령처럼 희끄무레하게 번지고 있다. 과거 장제스의 공산당 탄압을 묘사하고는 있지만 『인간의 조건』에서는 부차적인 것일 뿐이고, 오히려 '인간의 조건'과 '인간의 극복'을 막연하나마 .. 더보기
『뉴욕의 상뻬』 장 자끄 상뻬 (미메시스, 2012) 뉴욕의 상뻬 - 장 자크 상뻬 지음, 허지은 옮김/미메시스 《뉴요커》지의 표지를 1978년부터 2009년까지 30년 이상 장식해 온 상뻬의 그림 150여 점 수록_물론 인터뷰도 함께_재미가 쏠쏠함. 그리고 따라 그려본 상뻬 그림으로 마무리. 더보기
『교도소 도서관』 아비 스타인버그 (이음, 2012) 교도소 도서관 사서는 여성 재소자 대상 글쓰기 강좌에서 만난 쇼트(short)에게서 「나랑 한 번 할래?」 소리를 듣거나 속사포 장광설을 자랑하는 프랭크로부터 「신을 믿나?」 하는 말을 듣는다. 사실 쇼트의 말을 듣는다면 친절하게 윙크라도 찡긋했어야했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못했다. 그는 홉스의 『리바이어던』을 떠올리며 고독하며(solitary), 비루하고(poor), 악랄하고(nasty), 난폭하며(brutish), 짧은(short) 카테고리로 여성 재소자들을 머릿속으로 가름했다. 그가 그녀의 농담에 멋진 리시브를 하지 못한 이유는 거기 있었다. 하버드를 졸업하고 교도소 도서관 사서로 취직한 주인공은 한마디로 ‘먹물’이었다. 「폭력배들이 언제 ‘사회에 진 빚을 갚는’ 것 봤어? 이 새끼들은 일 좀 해야.. 더보기
『흑백』 미야베 미유키 (북스피어, 2012) 이를테면 텍스트와 서브텍스트의 맞물림. 그거다. 미스터리나 이런 괴담이 갖는 강력한 헤게모니는 현실에서 느끼는 두려운 마음을 일종의 (설명하기 힘든) 형태로 만들어준다는 것에 있다고 여기고 싶다. 뭔가를 맞닥뜨리고 인식하고 재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단숨에 퓽, 하고 쏟아내는 거다. 어떤 생각들을 전부 마음에 넣어 뚜껑을 닫아버리면 그만이지, 하고 쉬이 치부할 수 없다. 뭔가를 말한다는 것은 짐을 내려놓는다는 뜻도 될 수 있으며, 타자에게 마음을 내비침으로써 그 두려움이 내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재확인할 수도 있는 까닭이다. 마지막 이야기 「이에나리(家鳴り)」에서 저택을 지키는 관리인 ㅡ 왠지 웃을 수만은 없는 ‘끝판 왕’ 같은 느낌인 걸 ㅡ 이 저세상과 이 세상을 잇는 길목에서 손님을 맞이한다는 것을 이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