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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책들

『콧수염』 엠마뉘엘 카레르 (열린책들, 2001) 현대인은 자신이 행복하기 위해서 사는 게 아니라 행복해 보이기 위해서 사는 게 아닐까, 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면 ‘그’는 완전히 정신병자에 미치광이가 되고 소설 자체도 무색해질 우려가 있으므로 위와 같은 논리로 보기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인다. 그러므로 자신의 페르소나로서 ‘인간의 증명’을 꾀하려는 이와 그를 둘러싼 주변인들과의 드잡이에서 철저히 난자당하고 잠식되는 ‘콧수염 있는 인간’의 로직이 ‘콧수염 없는 인간’의 로직으로 변환된다는 쪽에 무게감을 두어야 한다. 『콧수염』이, 드러나지 않고 잠복해있는 행위와 시각작용을 공작적 인간(homo faber)으로 우스꽝스럽지만은 않게 표출하고 있는 까닭이다. 그럼 이 공작적 인간이 만든 도구는 비극에 이르는 뼛조각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으로 인해 긴장완화와.. 더보기
『사물의 안타까움성』 디미트리 베르휠스트 (열린책들, 2011) 첫 대면부터 왠지 세풀베다(Luis Sep úlveda)의 덥수룩한 외모를 상정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이거야말로 ‘외모의 안타까움성’이 아니겠나). 그리고 나는 이 작품에 또 하나의 타이틀을 붙여주기로 했다. 패트리셔 맥거의 『피해자를 찾아라(Pick Your Victim)』에 버금가는 ‘가족을 찾아라’로 말이다. 연못 속으로 오줌발 날리기 시합을 벌이던 어린 날의 디미트리와 마찬가지로, 그의 아들 역시 고속도로 주유소 화장실에서 변기 물에 빠진 꼬마 오리 노래를 꽥꽥 불러 대며 오줌 줄기를 갈기는 장면을 상상해보라, 정말로 아름다운 부자지간이다 ㅡ 제기랄, 이걸 어떻게 말로 설명한단 말인가……. 떼려야 뗄 수 없는, 오롯이 체득되어 몸이 먼저 반응하고야 마는 안타까움의 리얼리티가 살아있는 가족. 장레.. 더보기
『사랑은 혈투』 바스티앙 비베스 (미메시스, 2011) 사랑은 아름다워라……. 아이튠스에서 판매되는 노래 2,000~3,000곡 정도의 제목에 ‘사랑’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고 하는군. 몸과 몸이 다투고 마음과 마음이 불붙는 ‘친밀함’에 의한 유대감, 이런 사랑에 대한 정신적 중독 작용이 우리의 감정적 호응에 얼마나 부합할 수 있을까. 쥘 베른의 『80일간의 세계 일주』에는 ‘사티’라는 풍습이 설명되어 있다. 과거 인도에서 행해졌던 것으로 남편이 죽으면 그 아내가 자발적으로 불타는 장작더미에 뛰어들어 자살하는 것이란다 ㅡ 사랑이 소위 ‘헌신’과 동의어로서 판단될 수 있는 요소라 보여지기도 한다. 또한 인도 남부의 타밀족은 사랑의 포로가 된 사람들을 마야캄(mayakkam) ㅡ 현기증, 혼란, 도취, 망상 ㅡ 을 앓는다고 표현한다……. 이 『사랑은 혈투』는, 그.. 더보기
『네덜란드 살인 사건』 조르주 심농 (열린책들, 2011) 「화살처럼 살을 가로지르는 전기. 눈꺼풀에 어른거리는 찬연한 무지개. 두 귀에 감기는 거품 같은 음악. 그것은 오르가즘이어라.」 ㅡ 아나이스 닌(Anais Nin)의 말이다. 라이벌(rival)의 라틴어 어원을 보면 ‘다른 사람과 같은 강물을 사용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매력적인 파트너 한 명을 사이에 두고 경쟁하는 라이벌들, 그것도 내일이 없는 기항지의 매력을 두루 경험한 일등 항해사였고 자그마한 요트도 한 척 가지고 있었던 ㅡ 여자에 탐닉하고 영어와 독일어에 능통하기도 한 ㅡ 콘라트 포핑아를 사이에 두고서(질투라는 것은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알려 주는 지표의 성질만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얼마나 불안정한지도 알려 줄 수 있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또 인문학적 연구에서 어느 정도 이끌어낸 결론.. 더보기
『누런 개』 조르주 심농 (열린책들, 2011) 내 속에서 매그레의 자리를 찾아주자. 홈즈, 뒤팽, 포와로, 말로, 뤼팽을 모두 제치고 당연하게(!) 엘러리 퀸을 엄지손가락 위에 올려놓았었지만, 지금은 엘러리 퀸과 쥘 매그레 2명의 인물이 왼쪽과 오른쪽 엄지손가락에 하나씩 올라가 있다. 조르주 심농(Georges Simenon)의 버즈북 『매그레 반장, 삶을 수사하다』(열린책들, 2011)의 제목에서처럼, 궁극의 주안점은 죄를 진 평범했던 자들의 삶을 뒤따라가는 행보에 있다는 것이 『누런 개』에서도 드러났고, 앞으로 ‘매그레 시리즈’가 쌓이면 쌓일수록 나는 이런 식의 구태의연한 이야기를 하게 될 것이 뻔함에도 불구하고 쉬이 지나칠 수가 없음을 인정하는 바다. 일반적인 추리는 수수께끼를 해결하는 수준이기 마련이죠. 그런데 매그레는 범죄의 모순에서 출발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