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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책들

『어느 섬의 가능성』 미셸 우엘벡 (열린책들, 2007) 다시는 읽고 싶지 않다. 그의 작품은 『투쟁 영역의 확장』에 이어 두 번째인데 ㅡ 단순히 제목이 마음에 안 들어서 『소립자』는 아직 읽지 않았다 ㅡ 그가 자신을 두고 절망의 전도사로 취급하는 것은 부당한 일이 아니라고 한 것처럼 나 또한 그것이 부당하다고 생각지 않는다. 분명한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그를 좋아하고, 이 책도 두 번 다시는 읽고 싶지 않다. 이야기 속의 다니엘이 『신적인 환경』을 우연히 주워 읽고 절규를 토하고서 자전거 공기 주입 펌프를 던져 부숴 버린 것처럼 나도 이 빌어먹을 똥통 같은 텍스트의 지침을 들어가며 죽고 싶지는 않았다……. 그럼에도(그래서) 어떤 하나의 가능성, 다니엘과 다니엘25의 가능성, 신경질적이고 쾌활한 개(폭스)의 가능성, ‘기존인류’의 증언이 일치할 가능성, (.. 더보기
『소설』 제임스 미치너 (열린책들, 2006) 올해(2011) 읽은 어느 기사에는 두 소설을 비교하여 전개시킨 부분이 있었는데 그것은 이런 식이었다. ‘폴 오스터가 쓴 『뉴욕 3부작』은 한 인물에게서 여러 인물이 겹치는 과정에서 자기를 찾는 구도가 보인다면, 제임스 미치너(『소설』)는 작가 자신을 네 명의 등장인물로 나눈 셈이다.’ 공공 도서관 사서가 어린 셜리 ㅡ 이본 마멜 ㅡ 에게 해준 말은 더욱 농밀하다. 「(…) 그게 바로 소설이란다. 서로의 꿈을 교환하는 것…….」 이 작품은 나에게 부적과도 같은 것인데 연유는 이러하다. 일본에 있을 때 카미야(神谷)라는 오십 줄의 양반과 경마장엘 간 적이 있다. 그가 내게 말했다. 「태어나서 처음 산 빗나간 마권을 지갑에 가지고 있으면 교통사고를 막아주는 부적이 되는 거야.」 그때문은 아니지만 나는 지금까.. 더보기
『지상에서 영원으로(전3권)』 제임스 존스 (열린책들, 2008) 「재입대 블루스」 월요일에 제대비를 받았지,난 이제 더 이상 땅개가 아니야.군에서 너무 많이 돈을 주어 내 호주머니가 빵빵했지.쓸 돈이 아주 풍부했지,재입대 블루스. 화요일에 쇠푼을 들고 시내로 나갔어,더블베드가 놓인 방을 하나 잡았지.내일은 직장을 잡아야지 하지만 오늘 밤 너는 죽어 버릴지도 모르잖아.낭비할 시간이 없어,재입대 블루스. 수요일에는 바를 순례했지,내 친구들은 나를 왕좌에 올려놓았지.중국계 혼혈 여자 애를 하나 만났어,나를 가만히 놔두지 않겠다고 하더군.내가 그년을 때렸나?재입대 블루스! 목요일에 잠을 깨보니머리가 깨지는 것처럼 아프더군.내 바지의 호주머니를 뒤져 보니,돈이 모두 사라져 버리고 없더군.그년이 내 머리를 홱 돌게 했어,재입대 블루스. 금요일에 바를 다시 찾아가서공짜 맥주를 한.. 더보기
『하자르 사전』 밀로라드 파비치 (열린책들, 2011) 흠, 결국 처음부터 끝까지 곧이곧대로, 순서대로, 그렇게 읽어 내려갔다. 애초 한 번 읽어서는 텍스트의 혼란스러움에서 허우적댈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ㅡ 세상에는 슬쩍 한 번 눈길을 줬는데도 무궁무진한 흥미로움을 느끼게 하지만 두 번 다시 읽을 수 없는 책과, 쥐며느리가 곱송그린 몸을 펴듯 느릿하게 읽히지만 몇 번이고 다시 눈을 대고 싶은 책이 있는데 『하자르 사전』은 양쪽에 끼인 샌드위치의 꼴로 보인다. 각설하고, 하자르 민족을 이주시킨 것은 동쪽의 수컷 바람이라 해도 그들(의 역사)을 촘촘히 활자로 엮은 것은 어디 바람뿐이겠는가. 사실 ‘하자르의 얼굴’처럼 이쪽의 텍스트가 저쪽의 텍스트로 변모하는 양상을 곳곳에서 ㅡ 자의든 타의든 ㅡ 엿보게 된다. 아마도 내가 이 『하자르 사전』을 읽은 날 밤이 유.. 더보기
『그리고 죽음』 짐 크레이스 (열린책들, 2009) 제목을 보자. 니콜라스 네그로폰테의 『디지털이다(Being Digital)』, 영화 《존 말코비치 되기(Being John Malkovich)》 그리고 짐 크레이스의 『그리고 죽음(Being Dead)』. 모두 ‘being’이 들어있으니 이것은 네그로폰테의 저서처럼 ‘죽음이다’라고 옮길(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럼 ‘그리고’ 앞에는 뭐가 있을까. (아마도)삶이겠지. 그럼 ‘그리고 죽음’이 아니라 ‘죽음 그리고’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어차피 죽음 뒤엔 삶이고, 삶 뒤엔 죽음이니까 ㅡ 이런 식으로 하다 보면 ‘그리고 죽음’은 ‘죽음이다’, ‘삶이다’, ‘그리고 삶’ 또는 ‘그러나 삶’으로 바꿀 수 있다(말장난이 아니다). 드넓은 바다 전체를 소리로 바꾸어 버리는 해저 동굴처럼 노래할 수 있는 남자와,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