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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책들

『교차로의 밤』 조르주 심농 (열린책들, 2011) 티모르 섬에 살던 아오르족(Alor族)은 항상 불안과 초조감에 쌓여 있고, 의심이 많으며, 남을 믿지 않고, 자신감이 결여되어 있으며, 항상 복수심에 불타 있다. 그래서 서로 자신들을 방어하는 데에 모든 에너지를 소모한다. 『교차로의 밤』에서의, 교차로를 중심으로 모여있는 세 집의 사람들이 그렇다. 물론 아로르족은 태생적으로 유형화된 경우이지만, 『교차로의 밤』은 문화적인 유형화로 맺어진 관계를 보여준다. 또 다른 것이라면 전자는 언뜻 보기에는 이런 사회가 어떻게 존속될 수 있는지 의심이 가지만, 후자를 보면 그런 낌새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고로 ‘교차로’란, 어디로든 나갈 수 있지만 어디로도 나갈 수 없는 그런 갈림길이다. 그럼 ‘밤’은…… 제임스 톰슨(James Thomson)이란 시인이 이렇게 말.. 더보기
『권력과 영광』 그레이엄 그린 (열린책들, 2010) 나는 단편의 조각들로서 『권력과 영광』을 기억한다. 그리고 책을 손에 쥐고 있던 내내, 영화 《바그다드 카페(Out of Rosenheim, Bagdad Cafe)》의 쟈스민과 브렌다가 이 작품의 위스키 사제와 경위로 겹쳐 보였다 ㅡ 심지어 영화에서 울려퍼지던 음악까지도(「콜링 유(Calling You)」). 황량한 사막과 황량한 마음은 그 노선을 같이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위스키 사제와 딸’이라는 것돠 ‘위스키 사제와 경위’라는 이 두 가지 명제는 같이, 그리고 달리 생각되기도 한다. 살지만 살지 않는 것, 죽지만 죽지 않는 것. 위스키 사제의 모호한 의지와 경위의 숙연함은 살아지면 살고 죽어지면 죽는다는 논리와도 비슷하다. 장 아메리(Jean Améry)는 자신의 책에 이렇게 썼다. ‘그 어둠을 .. 더보기
『투쟁 영역의 확장』 미셸 우엘벡 (열린책들, 2003) 흡연실을 나와 전철을 타기 위해 나는 정기권을 찍고 오십 미터쯤을 걸어가 선로 앞에 선다. 츄오센은 급행이 많아 집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는다. 칸다, 오차노미즈, 요쓰야만 거치면 바로 신주쿠다. 노란선 안쪽으로 펑퍼짐한 카고 바지를 입은 남자가 서있다. 나는 설마, 하며 그의 바지 속에 구겨 넣은 오른손을 주목한다. 그 속에는 아마도 권총이 들어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몇 발이 장전돼있는지 꼼지락거리며 세고 있는 중이다. 잠시 후 벨이 울리고 전철이 들어와 서면, 한 발짝 앞으로 나가 「젠장! 이렇게도 무료할 수가 있단 말인가!」 하고 소리치면서 자신의 입 속에 조그만 탄환 하나를 박아 넣을 것이다. 무심코 돌아본 자동판매기에 드링크를 손에 쥔 남자가 싱글싱글 웃고 있다. 그가 들고 있는 건 리포비탄D.. 더보기
『아홀로틀 로드킬』 헬레네 헤게만 (열린책들, 2010) 누군가의 서평처럼 ‘확실히 완전히 개운하다고는 할 수 없다’는 건 분명하다. Ctrl+C와 Ctrl+V만으로는 세상만사가 탈 없이 흘러가지 않을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이기주의적이고 무신경한’ 열일곱의 작가는 본문에서 이것을 암시한다, 그러므로, 혹은 그렇지만, 이 문제는 여기서 가차없이 빼기로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왜 이다지도 극찬을 받고, 미프티는 (맙소사!) 세상의 모든 원죄를 혼자서 짊어진 얼간이가 되었는가에 대한 감흥은 책 겉표지의 새빨간 아홀로틀로 대신하자. 나는 죽었다 깨도 미프티처럼은 될 수 없다. 심하게 탈골된 언어를 구사하며 마치 카타콤에 갇힌 로마 병사처럼 기는 그녀의 삶은, 당최 이해하기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미프티는 무라카미 류의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더보기
『이방인』 알베르 카뮈 (열린책들, 2011) 『이방인』을 두고 페이거니즘의 세계를 느낀다면 그거야말로 불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허위의 도덕을 강요하는 인간들, 전통적 가치의 옹호자들에 의해 사람 한 개(個)가 검토되고 남이 나를 대신하는 소외감. 카뮈가 「사회는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눈물을 흘릴 사람들을 필요로 한다.」고 말한 것은 말 그대로 사회 질서란 이름으로 소외당하는 이방인의 삶의 진실성을 자각하게 한다. 사회는 말할 것도 없이 진실성과 허위의 문제를 그 전체적인 넓이 속에서 취급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다. 달리 말하면 허위의 도덕을 무시한 작용은 본질적으로 사회로부터 거부당한다는 거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척 혹은 잘 모르지만 응당 그러한 척, 서로 사회적 관습의 교환을 바라는 여러 가지 집단의 구성원에게 널리 알려져..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