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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책들

『제3제국』 로베르토 볼라뇨 (열린책들, 2013) 제3제국 - 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이경민 옮김/열린책들 나치와 전쟁이란 명제라면 우리는 이미 소설 『나치와 이발사』나 영화 《버디》와 같은 매개체를 통해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것들로 인해 충분히 악마 같은 소설과 영화들을 접했으면서도 늘 (어떤 의미에서건) 전쟁과 상흔에 대해 이야기하고 해석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ㅡ 인간이 꿈의 실현을 욕망한다지만 실은 그 욕망 자체를 욕망하고 있는 거라면 어떨는지. 그런 측면에서라면 소설 속 찰리의 대사가 의미심장해질 수밖에 없는 것은 빤한 일일 것이다. 그는 친구의 집을 찾다가 작고 까만 개를 치어 죽인다. 우도는 전에 봤던 개인지 유기견인지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느냐고 묻지만 찰리의 대답은 실로 무시무시하다. 「차에서 내려서 자세히 살펴봤거든. 같은 놈.. 더보기
『선셋 파크』 폴 오스터 (열린책들, 2013) 선셋 파크 - 폴 오스터 지음, 송은주 옮김/열린책들 그러니까 책과 신발, 인형, 더러운 양말, 텔레비전, 우표첩, 색 바랜 매트리스 따위의 사진이 마일스에게 왜 필요한 것일까. 리처드 골드스타인이 부고란에 쓴 기사보다 비교적 덜 삽상하고 덜 정제된 그 사진들이. 허튼소리만 해대는 입정 사나운 꼰대처럼 혹은 임신하자 부풀어 오르는 배를 무시하지 못하고 망가져만 가는 몸에 경악했을지도 모를 메리-리처럼 ㅡ 이런 불행들을 막기 위해 애쉬튼 커처가 했듯 마일스에게도 과거라는 탯줄이 필요했을지도(어떤 의미로든). 잊힐 권리라는, 이 세계에서 휘발되고 싶은, 어찌 보면 추레할는지도 모르는 그 생각이 차라리 하루키의 『해변의 카프카』에서의 그것보다는 조금 더 명확하고 덜 불건전하다. 그래서 여기에 모리스의 시점이 .. 더보기
『하늘의 문』 이윤기 (열린책들, 2012, 개정판) 하늘의 문 - 이윤기 지음/열린책들 뭐 꼭 종교에 얽매일 필요가 있을까마는, 온갖 문장이 종교(적인 것들)로 점철되어 있어도 좋다. 내가 싫어하는 것은 어쭙잖게 구절을 읊어가며 막무가내로 전도하려는 예수쟁이들이지 선량한 세속은 아니므로. 더군다나 이것은 허구이긴 하나 그의 이야기이고 그의 삶이긴 하나 거짓의 산물인 소설이며 또 소설 속의 소설도 있고 소설을 위한 소설도 있으니 매한가지다 ㅡ 아무리 자전적 소설이라 하더라도 볼라뇨의 음경 얘기는 하고 싶지 않다(그러나 또 해버리고 만다). 의도야 어찌되었건 인간은 '5마일 길'에 휘둘리기 십상이다. 뭐든 피부에 와 닿아야 (거의) 온전히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고 그제야 뭔가를 바꿀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스스로가 이해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용납할 수가 있겠나.. 더보기
『우리들』 예브게니 이바노비치 자먀찐 (열린책들, 2009) 우리들 - 예브게니 이바노비치 자먀찐 지음, 석영중 옮김/열린책들 조직화된 사각형. '개인'이란 없는 투명성의 유리. 대오를 이루며 걷는 발들. 자유의 노란 이미지. '나'를 함몰시켜 삭제할 때 발생 가능한 '우리'와 '조직'과 '조화'와 '행복' ㅡ 이 『우리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나 오웰의 『1984』에 비해 날것의 느낌이 들며 거칠다. 소설 속의 '단일제국'에서는 비(非)유클리드적이거나 달리(Salvador Dali)의 「기억의 집요함(The Persistence of Memory)」(1931)과 같은 것들은 '정신 이상'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달리는 「기계적인 물체들은 나의 적이 되어야 한다. 시계의 경우 부드러워져야 하거나, 전혀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고 하며 녹아내리는 치즈를 보고서 흐.. 더보기
『나치와 이발사』 에트가 힐젠라트 (열린책들, 2012) 나치와 이발사 - 에트가 힐젠라트 지음, 배수아 옮김/열린책들 왜 자꾸 채플린이 생각나는 거지…… 그래, 그랬다. 그의 영화 《위대한 독재자》가 먼저 있었다. 영화에서 채플린은 히틀러를 풍자한 힌켈이란 인물과 유대인 이발사로 번갈아 등장했었다(여기에는 슐츠라는 인물도 나온다! 심지어 한나까지!). 힌켈과 닮은 이발사가, 여기 『나치와 이발사』에서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등장한다. 우선 독일인 막스 슐츠가 있고 유대인 이치히 핀켈슈타인이 있다. 이 '슐츠-핀켈슈타인' 공식은 시종일관 샴쌍둥이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둘은 어릴 적 친구였지만 슐츠는 하켄크로이츠 완장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친구 핀켈슈타인과 그의 부모를 사살한다. 히틀러유겐트에서 크리스탈나흐트, 홀로코스트까지 이어지는 고리다. 그런데 전쟁이 끝나고..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