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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깊은 글쓰기』 최종규 (호미, 2012) 『뿌리 깊은 글쓰기』에 나오는 이야기들에는, 나는 100%까지는 동의할 수 없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개인적으로는 좋은 말 ․ 올바른 말을 이해하고 알고 있으면 된다는 거다. 사실 책에 나온 대로 모든 말을 억지로 고치게 되면 굉장히 어색할 때도 있으니까. 그러니까, 『뿌리 깊은 글쓰기』를 읽으며 아, 앞으로는 이렇게 고쳐 말하고 쓰는 게 맞는 거고 당연히 이렇게 해야겠구나 하는 게 아니라, 우리말의 뿌리를 알고 바른 표현을 습득해 그것을 인식하면서 살아가면 된다. 예를 들자면 이런 거다. 본문에서 ‘나무 벤치’를 ‘나무 걸상’으로 다듬는 부분. 당장 이렇게 바꿔버리면 혼란스럽다. 의사소통 과정에서 의미가 잘 흐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대신 저러저러한 ‘미국말’은 이러이러한 우리말로 얼마든지 표현할 수 있.. 더보기
『외딴집(전2권)』 미야베 미유키 (북스피어, 2007) 화가 한효석의 「감추어져 있어야만 했는데 드러나고 만 어떤 것들에 대하여」 시리즈 ㅡ 찾아보고 놀라지 말라 ㅡ 는 인두겁의 사회 · 문화적 징표를 보여준다. 각 작품마다 다양한 이야기를 감추고 있긴 하지만 ‘인간의 쓸데없는 피부’에 대한 것만은 동일하다. 다음은 한효석 작가의 말. 「5밀리미터만 벗겨도 우리는 고깃덩어리다. 부와 명예를 가졌을 때에 자신을 신격화하고 착각하며 남을 지배하려 하다 보면 동물들 사이에서는 없는 문제가 발생한다.」 ……마루미의 바다에 토끼가 날면서부터, 이 고깃덩어리들 사이의 카드놀음이 시작된다. 드라마틱하다는 건 이런 거로군. 문득 생각이 들었다. 가가 님의 신비가 끝내 신기루로 남을 것임을 짐작했을 땐 좀 너무하다 싶었지만 어차피 그보다는 ‘가가 님과 아이들’의 이야기니까 .. 더보기
『7인의 미치광이』 로베르토 아를트 (펭귄클래식, 2008) 테오도르 립스(theodor lipps)의 '감정이입설'에 비유하자면, 주인공 에르도사인의 감정은 범죄에 매료되고 돈에 매료된다. 모든 것은 허무와 거짓말로 귀결되고 동시에 그 모든 것은 환상이다. 에르도사인은 마치 존경과 멸시를 함께 받는 종교인과도 같다 ㅡ 리얼리즘 혹은 판타지 ㅡ '내 바깥에, 내 육체의 경계를 벗어나면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다(p.120)).' 범죄와 비극을 바라는 그는 점성술사의 '목 매단 인형'으로 대치되며 혼란 속에서 그 혼란을 스스로에게 가중시킨다 ㅡ 에르도사인이 발명가로 설명되는 것도 하나의 방편일 것이다. 즉, 허구에서 현실을 보고, 현실에서 허구를 본다. 악다구니로 살아가며 돈에 목숨을 걸고, '돈을 짝사랑'하는 거다(짝사랑이라는 게 중요하다). 오직 1㎠ 안에서,.. 더보기
『교도소 도서관』 아비 스타인버그 (이음, 2012) 교도소 도서관 사서는 여성 재소자 대상 글쓰기 강좌에서 만난 쇼트(short)에게서 「나랑 한 번 할래?」 소리를 듣거나 속사포 장광설을 자랑하는 프랭크로부터 「신을 믿나?」 하는 말을 듣는다. 사실 쇼트의 말을 듣는다면 친절하게 윙크라도 찡긋했어야했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못했다. 그는 홉스의 『리바이어던』을 떠올리며 고독하며(solitary), 비루하고(poor), 악랄하고(nasty), 난폭하며(brutish), 짧은(short) 카테고리로 여성 재소자들을 머릿속으로 가름했다. 그가 그녀의 농담에 멋진 리시브를 하지 못한 이유는 거기 있었다. 하버드를 졸업하고 교도소 도서관 사서로 취직한 주인공은 한마디로 ‘먹물’이었다. 「폭력배들이 언제 ‘사회에 진 빚을 갚는’ 것 봤어? 이 새끼들은 일 좀 해야.. 더보기
『흑백』 미야베 미유키 (북스피어, 2012) 이를테면 텍스트와 서브텍스트의 맞물림. 그거다. 미스터리나 이런 괴담이 갖는 강력한 헤게모니는 현실에서 느끼는 두려운 마음을 일종의 (설명하기 힘든) 형태로 만들어준다는 것에 있다고 여기고 싶다. 뭔가를 맞닥뜨리고 인식하고 재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단숨에 퓽, 하고 쏟아내는 거다. 어떤 생각들을 전부 마음에 넣어 뚜껑을 닫아버리면 그만이지, 하고 쉬이 치부할 수 없다. 뭔가를 말한다는 것은 짐을 내려놓는다는 뜻도 될 수 있으며, 타자에게 마음을 내비침으로써 그 두려움이 내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재확인할 수도 있는 까닭이다. 마지막 이야기 「이에나리(家鳴り)」에서 저택을 지키는 관리인 ㅡ 왠지 웃을 수만은 없는 ‘끝판 왕’ 같은 느낌인 걸 ㅡ 이 저세상과 이 세상을 잇는 길목에서 손님을 맞이한다는 것을 이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