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학

『악평』 빌 헨더슨, 앙드레 버나드 편집 (열린책들, 2011) 악평 - 빌 헨더슨, 앙드레 버나드 지음, 최재봉 옮김/열린책들 별로인 책을 읽었을 때 「이걸 책이라고! 뭐 이런 게 다 있어!」, 나는 이렇게 욕하며 책을 집어던진다. 물론 그게 나쁜 책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내 취향이 아닐 뿐이고, 내가 재미를 느끼지 못했을 뿐이니까 ㅡ 하긴 그럴 정도면 끝까지 읽기도 전에 중간에서 책 읽기를 포기했을 것이다. 반대로 몹시도 재미있는 책을 읽었다면 감상문 따위를 적으면서 입에 발린 칭찬을 늘어놓는다. 이런저런 검색까지 해가며 '어려운 말들'도 좀 섞어가면서. 참 바보같은 말이지만 나는 '사악한' 서평은 쓰고 싶지 않다. ①작가가 우연히도 내가 써놓은 감상을 읽고서 좌절에 빠질 것이다. ②그 책을 구입하려던 사람이 내 감상 따위에 구애되어 구매버튼을 클릭하는 .. 더보기
『일상의 광기에 대한 이야기』 찰스 부코스키 (바다출판사, 2000) 일상의 광기에 대한 이야기 -그 첫번째 - 찰스 부코우스키 지음, 김철인 옮김/바다출판사 무라카미 하루키식의 말랑말랑하고 애틋한 섹스 묘사는 아니더라도, 부코스키의 섹스에는 솔직함이 있고 날것의 호르몬이 즐비하다. 부코스키 얘기를 하려면 일단 섹스를 빼고는 할 수 없을 정도다. 누가 됐든 섹스를 하는 이유를 들기엔 어려움이 따른다. 거기엔 굉장히 매혹적이고 복잡하며 불가사의한 덩어리가 존재한다. 아무리 개별적 동기를 쪼개고 쪼갠다한들 효과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심지어 첫 데이트에서 '너무 쉬워 보이면 안 된다'라는 생각 때문에 섹스를 최대한 뒤로 미루는 여성(이런 남성은 없을 줄로 안다, 나는 확신한다)들도 있지 않나 ㅡ 별로 상관은 없지만 여기에 덧붙이면, 첫 데이트에서 섹스를 하거나 하지 않는다 .. 더보기
『불야성』 하세 세이슈 (북홀릭, 2011) 하세 세이슈(馳星周) ㅡ 홍콩 배우 주성치의 이름을 뒤집어놓고 일본어로 발음한 필명 ㅡ 는 바보 같은 짓을 했다. 『불야성』 단 한 권으로(물론 시리즈가 있긴 하지만) 사람 진을 다 빼놓으려고 작정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내가 알고 있는 하드보일드 쪽이라면 대실 해밋이나 레이먼드 챈들러 정도밖에 없으니 그건 그렇다 치고, 극의 전개와 묘사며 인물의 조형이며 독자까지 배신하는 철저함이며, 뭐 하나 뛰어나지 않은 게 없다. 정말 오랜만이다, 한 자리에서 내리 읽게 만드는 작품은. 하드보일드의 태생적 특질, 여기서는 선택, 선택만이 살 길이다. 어딘가에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주인공이 붙잡아야 하는 끈은 바로 거기다. 당연히도 나는 슈미트(Carl Schmitt)를 떠올리게 된다. 「적이란 바로 타인,.. 더보기
『칠레의 밤』 로베르토 볼라뇨 (열린책들, 2010) 칠레의 밤 - 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우석균 옮김, 알베르토 모랄레스 아후벨 그림/열린책들 꼭 칠레를 90도로 회전시킨 모양 같다_아후벨의 '가슴을 짼 사제가 탄 핏빛 배' 표지. 삶이 무슨 소용이 있고 책이 무슨 소용이 있겠어, 그저 그림자일 뿐인데_당신이 바라보고 있던 그 그림자들처럼요?(p.63) 더보기
『웃음(전2권)』 베르나르 베르베르 (열린책들, 2011) 사진관에서 주인장과 다툴 뻔한 적이 있다. 오래 전 일인데 증명사진을 찍으러 갔을 때였다. 「안경을 조금만 올리세요」라든가 「고개를 좀 더 이쪽으로요」 하는 건 이해할 수 있다. 단 하나 나를 짜증나게 하는 말은 「웃으세요」다. 기분 나쁘게 비웃는 건 잘하면서도, 누가 웃으라고 하면 못 웃는다. 즐거운 상황이 아니면 억지로 웃을 수 없는 거다. 그래서 내 얼굴이 나온 사진은 하나같이 똑같은 표정이다. 그런 나에게 '웃으세요'라니. 이게 무슨 가당찮은 말이던가. 내가 가만히 있자 주인장은 계속 웃기를 권했고 나는 원래 얼굴이 이모양이니 대강 찍어달라고 했다. 결국 사진을 찍긴 찍었지만 그 과정에서 그와 드잡이를 하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었다. 『웃음』을 보면 억지로 웃어야 하는 '훈련'이 등장하는데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