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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납관부 일기』 아오키 신몬 (문학세계사, 2009) 일본 영화 최초로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받은 《굿 바이》의 원작이라는 카피가 써진 띠지가 있긴 한데, 그건 버린지 오래라 잘 모르겠고 관심도 없다. 이걸 어떻게 영화로 만들었는지 찾아보진 않았지만 별로일 것 같은 기분이다. 『납관부 일기』는 그것 그대로 존재하는 게 낫다, 는 게 내 생각이다. 과거 학창시절에 영안실에서 염(殮)을 하는 아르바이트를 해볼까 했었다. 내 기억으론 시신 하나에 13만원이란 돈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결국 하지 못했다. 완력에도 소질이 없고, 강심장이기는커녕 비리비리한(지금도) 학생이어서 좀처럼 그런(!) 일은 할 수 없었다. '태연하게 죽는 것'은 가능할지 몰라도 '태연하게 사는 게' 가능하려나. 이 책을 읽은 뒤 계속 생각하고 있다. 사자(死者)를 대하면 생자(生者)의.. 더보기
『나는 왜 쓰는가』 조지 오웰 (한겨레출판, 2010) 어떤 책이든 정치적 편향으로부터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없다.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의견 자체가 정치적 태도인 것이다 (...) 지난 10년을 통틀어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정치적인 글쓰기를 예술로 만드는 일이었다 (...) 나는 내가 글을 쓰는 동기들 중에 어떤 게 가장 강한 것이라고 확실히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어떤 게 가장 따를 만한 것인지는 안다. 조지 오웰이 1946년 쓴 짧은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의 구절이다. 지금은 몹시 유명한 문구가 되었다. 조지 오웰이라고 하면 역시 『1984』나 『동물농장』을 떠올리게 되고 나 또한 이 두 작품밖에 읽어보지 않았다. 이런 청맹과니 같은 짓은, 이 두 소설이 조지 오웰의 저술 중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했다. 특히 『나.. 더보기
『우부메의 여름』 교고쿠 나쓰히코 (손안의책, 2004) 어쩌면 추리소설로서는 꽝일 수도 있겠다. 그도 그럴 것이 독자들로 하여금 지지부진한 장광설이라 느끼게 할 만한 죄(?)를 짓고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그렇게 따져들기 시작하면 이 책 전체가 장광설일 것이다). 그러나 희한하게도 『우부메의 여름』은 이 '장광설'이 매력일지도 모른다. 작품 전체를 단단히 감싸 쥐고 있는 건 역시 교고쿠도의 길고도 긴 입바른 소리로 시작되는 발화점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책 뒤표지의 간단한 카피문구만 보고 내용도 간단하다고 단정하는 건 피해야 할 일이다. 이야기의 외견은 어떨지 몰라도 그 플롯이나 내용인즉슨 시쳇말로 '구멍 숭숭 뚫린' 작품이 아니므로. 전후 새로운 일본이 만들어지는 분위기도 다소 녹아있고, 등장인물들 간의 밸런스나 내용적 밀도의 밸런스, 일상적 세계가 파괴되.. 더보기
『말벌 공장』 이언 뱅크스 (열린책들, 2005) 말벌 공장 - 이언 뱅크스 지음, 김상훈 옮김/열린책들 프랭크와 접착되는 방어기제_불편하긴 해도 불쾌하지는 않다_물론 텍스트는 불쾌하겠지_근데 어디 불쾌하지 않은 소설이 있던가?_어딘가에서 금방이라도 점액질 비슷한 것이 머리 위에 떨어지기라도 할 것처럼. 더보기
『카프카 평전』 이주동 (소나무, 2012) 글을 씀으로써, 낯설고 부조리한 세상을 텍스트의 서사 안으로 끌고 들어온 카프카였다. 그리고 남들이 잠든 밤에 홀로 깨어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만족했던 사람이었다. 처음 『카프카 평전』을 집어 들었을 땐 '평전'이란 단어가 주는 시간과 압력에서였는지 이유 없는 거부감이 들었지만, 수수께끼와도 같은 그의 작품은 물론이거니와 카프카란 인물 자체도 꼭 알 수 없는 수수께끼 같다는 생각에 미쳐 이 두꺼운 평전에 빠져들었다. 초인 혹은 거인이었던 아버지의 반대를 비롯해 사회와 세상이란 굴레 속에서 그를 존재하게 한 건 언제나 글쓰기였다. 불행하고, 불행하다. 하지만 좋은 생각을 했다. 한밤중이다 (...) 불이 켜져 타오르는 램프, 조용한 집 안, 어두운 바깥, 깨어 있는 마지막 순간들, 그것은 나에게 .. 더보기